달리기의 문 앞에서
요즘 러닝열풍이 거셉니다.
어쩌면 제가 관심이 있어 알고리즘이 러닝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요.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쉽습니다.
첫째, 혼자 해도 돼서. 둘째,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아서.
이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무라카미하루키가 한 말인데요.
저의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비용이 적게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33세이던 1982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죠.
왜 그렇게 계속 달리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계속 달려야 할 이유가 아주 조금밖에 없기 때문”이라 답해요.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16p
그렇게 오래도록 달린 그도 한 번 쉬기 시작하면 다시 뛰러 나가기 더욱 어렵다는 걸 느낀다고 합니다.
책에서 작가는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전해요.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이라는 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9p
달리다가 어느 순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오면 '그만 달릴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마치 인생과도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이고, 그 고통을 지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선택하기에 달렸으니까요.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도 어쩌면 본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달리기를 못해요. 심박수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달리는 자세도 엉망입니다.
그렇지만 목표한 거리를 완주하고 땀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만큼은 저 자신이 제법 대견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순간이 충분한 자기만족과 자신감을 주거든요. 실제로 그런 감정 상태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행복이죠. 그런 작은 행복한 감정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도구이며, 버티려면 이겨내려면 행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이 목표가 되면 허무해지잖아요.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가 오면 아.. 이제 그만 달릴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거든요.
그럴 때 저를 일으킬 수 있는 일관되고 꾸준한 어떤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에서 언급한 '견고한 근성'이자 '기죽지 않는 마음' 같은 걸 저도 만들어보려고요.
어쩌면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