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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Apr 28. 2020

알코올중독 일기_취한 밤들도 괜찮아요.

맨 정신이 아니어도 그럭저럭 살아지니까요.


나는 지난겨울 동안 늘 취해있었다. 


사람이나 계절에 취했다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드렁큰, 꽐라가 되어 살았다.

특별히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도 아니고, 주량이 센 것도 아닌데

지난겨울은 뭐가 그렇게 견딜 수 없었는지 맨 정신이었던 날이 기억에 없다.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



고백하자면 내 주량을 나도 모른다.

서른이 넘었는데 내가 주량을 모른다고 말하면 주변의 반응은 하나 같이, ‘술이 정말 세구나’라고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거나, 소주 반 병을 마시거나 취한 상태는 동일하다.

그 이상을 마시면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주사로 술을 먹는다.

드문드문 필름이 끊기기는 하지만, 주변의 어떤 유혹에도 지지 않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벗고 알몸으로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 맡에 누가 다녀간 것처럼

겉옷, 속옷, 양말까지 금방 빨아서 개어놓은 형태로 놓여있다.

대충 살기가 인생 모토인 나에게, 술을 마실 때만 나오는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주 3일을 나와 새벽 네 시까지 소맥으로 3차를 마셨던 수학강사는 내 노트에

‘주사=계속 마시기’라는 글 함께, 수학 문제를 하나 남겨 놓았다.

x값을 구하라는 미션을 주고 떠난 것. ‘답 맞추면 커피 한잔’을 아주 예쁜 산머루 색 잉크로 말이다.


나는 노트를 펼칠 때마다 일기를 쓸 때마다 항상 그 페이지 제일 먼저 펼쳐진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날의 앞뒤 정황, 기억이 흐릿해서 금세 넘겨버린다.

어떤 순간은 디테일까지 기억하고 싶은데, 알코올이 그것을 허용할 리가 없지 않나.    


  



시작은 가벼운 맥주 한 잔이었다.

생에 네 번째 소개팅을 한 날, 나는 상대에게 맥주를 마시자고 말했다.

술을 잘못 마시기도 하거나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은 안 먹은 지 5년이 넘었다는 그를 나는 붙잡았다.


“잔만 채우고 있어요.”


유순하고 눈이 예쁜 남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아자카야로 들어왔고,

연거푸 맥주 4잔을 마시고 벌게진 눈을 하고 친구한테도 하지 않았던 속내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시험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이가 먹을수록 외로운 것이라든가

가족에 대한 기저에 깔려 있는 불편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청하 몇 병을 비웠고 우리는 막차를 타기 위해 달렸다.

그해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고, 나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남자의 손에 핫팩을 쥐어주고 빠르게 돌아섰다.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교포와 곱슬머리가 정말 예쁜 동생이랑 셋이

새벽 다섯 시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는데 무작정 그가 나를 따라서 차에 올라탔다.

내가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내렸지만, 찬바람을 맞으니 금세 속이 진정되었다.

그 대가로 나는 긴 터널을 걸어야 했다.


계속 혼자 갈 수 있다고 내가 막무가내로 우기는 바람에

그도 나와 적정 거리를 두고 긴 터널을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긴 길을 따라왔다는 사실을, 2-30분 가까이 걸어서 우리 동네에 도착한 뒤에야 알았다.

순댓국집에 들어갔다.

나는 연거푸 물만 마셨고, 그는 순댓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서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나는 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별 얘기를 다  떠들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하다가, 아주 중요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가,

재미없는 농담도 건넸다. 그는 간간이 웃었고, 장난스럽게 물컵으로 ‘짠’을 하기도 했지만 절대 그 이상 마시지는 않았다.


이런 사소한 규율과 친절이 만취상태에도 발동하는 나의 일종의 예의인 셈이다.     


이건 아주 긴 겨울 중 일부의 기억에 해당한다.

왜 취해서 지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그런 날들이 지속되었다.

(물론 고비의 순간들은 있었다. 나의 이성과 자제력을 떠난 순간들은 가끔은 찾아왔지만 매우 무탈했고, 모두 무사했다)


술을 마시고 깨어서 숙취로 바닥을 기면서도 또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 날들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고, 아침이 와도 잠이 깨지 않는 날이 있듯이 그냥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겨울은 술 덕에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취한 밤들 사이사이 취한 말들을 건네면서 오래 웃었고 오래 울었다.

그럭저럭 겨울을 보냈고, 이제 봄이 오고 있으니,

맨 정신이 아니어도 살아지는 시간들이 있으니 이것도 그런대로 꽤 괜찮지 않은가.              



 

*수학강사에게 나는 유치원 시절 퇴학당한 이야기까지 했으면서,  정작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과였다는, 중요한 사실은 말해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 년 동안 문과에 몸 담고 있었지만, x값은 아주 간단하게 찾았다.


덧, 답을 찾았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모르겠다, 는 오답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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