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1.
서울의 끝, 서울과 의정부 경계에서 육 년을 살았다.
내 20대를 그곳에서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 학위를 받고, 글을 쓰고, 이별을 반복하고, 경찰을 부르고, 많이 울고 웃었다.
지나고 보니 좋은 기억은 없지만 딱히 나쁜 기억도 없다. 그 동네를 떠나올 때, 트럭에 짐을 싣고 침대 프레임만 덩그러니 남은 원룸을 돌아보던 기억이 난다.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이사하는 차 안에서 눈물을 훔쳤는데, 아마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없지만 추억이 많은 이상한 곳이라서 그랬겠지.
최근에 애인과 그 동네에서 자주 만난다. 애인의 회사가 근처고 내 모교가 그곳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서 메밀을 먹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여기는 내가 누구랑 갔던 곳이고, 여기는 내가 뭐 했던 곳이야.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어, 재미없을 법도 한데, 애인은 그런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물어온다. 신이 난 나는 더 많은 기억들을 찾아낸다.
사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나는 그가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두 번째 만난 막걸릿집에서 그는 노트에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을 빼곡하게 적어왔고(질문 리스트 같은)
나는 그것을 빼앗아 읽어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꾹꾹 눌러쓴 필체며, 종결어미를 마무리하다만 물음표들을 보고 그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해서 그토록 궁금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순간에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이성이든 인간적으로든)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떤 감각은 경험의 유무와 관계없이 강렬하게 와 닿기 마련이니까.
애인과 나는 다투지 않는다. 싸움이 되지 않는다. 양극단을 오가고 손바닥 뒤집듯 감정이 변하는 나와 다르게 그는 감정의 간극이 크게 없는 듯하다. 반대로 그가 말하는 불편 혹은 서운함은 수많은 고민과 사고 끝에 나온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안다. 나는 오랫동안 애초에 타인한테 불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놀랄 만큼 솔직한 그가 부럽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내가 엉엉 울어버린 이유도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아마도?)
밥을 먹다가, 이거 좋아해? 저거 좋아해? 그럼 이건? 저건? 쉴 새 없이 떠드는 나를 말없이 응시하던 상대가, 그런 건 차차 알아가는 거라고, 좋고 나쁨을 그렇게 구별하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나는 울어버렸다.
서운함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순간의 수치심이었을까.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서였을까.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었겠지만) 개중에는 그 순간 이 사람이 더 이상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게 분명하다.
그와 헤어지고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 나를 괴롭히던 내 성격과 연관된 자기혐오를 일깨웠고, 두려움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 무슨 정신으로 30km를 달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눈물을 닦느라 핸들을 잡은 손을 이리저리 바꾸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그 일로 인해 나의 어떤 버튼이 눌려버렸다. 성인이 된 이후에 타인이나 이성 앞에서 그렇게 아이처럼 울어본 적이 처음이라 적지 않게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날을 이후로 조금씩 무언가를 열기 시작했다. 나를 오픈하기 시작했고,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고, 손도 넣어보고 응석도 부려보고 뭐 그런.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놀랍고 또 생경한 경험이다.
2.
오래전 이촌 한강공원에 갇힌 적이 있었다. 갇혔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리겠만, 이촌 한강공원은 미로 같아서 한번 들어가면 초행길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이 표현이 맞다!
그때 당시 무조건 결혼이 하고 싶다는 선배 언니한테 나는 '인간들은 왜 그렇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해?'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언니는 '아이가 갖고 싶다는 게 아니야, 아마 너는 영원히 알지 못할 기분'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두 시간을 넘게 한강공원을 걸었다.
비가 온 다음 날이었고, 습하고 끈적한 기온에 서로의 팔이 스치기만 해도 축축한 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라던 그런 날. 흠뻑 젖은 흙을 탈주했다가 돌아갈 길을 잃은 지렁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실타래처럼 널려 있었던 날.
개중에 몇은 죽고 몇은 움직여서 나뭇가지로 젓가락을 만들어서 흙으로 그것들을 돌려보내다가 너무 수가 많아서 포기했던 그런 날.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지렁이를 집으면서 말을 건성으로 들어서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말끝에 언니는 "사람이 원래 다 그래, 기대하고 서운하고 슬퍼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지구에는 인간이 너무 많으니까, 굳이 일조하지 말자"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요즘 가장 많은 통화를 하는 사람이 선배 언니라서 그런지 종종 길을 잃었던 그날을 떠올린다.
언니가 말했던 외로움과 서운함과 기대와 슬픔 같은 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모르겠지만.) 타인을 사랑하면서 인류애를 회복했다고 하면 비약일까.
언니 말에 의하면 공감의 영역을 획득했다랄까. 이제는 길을 잃은 미물이나 동물보다 사람이 가엾고, 내 옆 사람의 슬픈 표정만 봐도 마음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어떤 감각은 유사체험이 가능하며 때론 동일시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