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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Sep 26. 2020

[창작과비평] 2020 가을호

공선옥 「저물옄」 



-먹골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대가 지난 뒤, 나이가 지긋한 두 화자가 주고받는 것이 기본 서사

(먹골 서사에 해당하는) 과거 이야기의 화자와 나이가 인접해서, 굳이 두 개의 서사 층위를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이로 인한 효과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해당 이야기를 듣는 청자 역시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면서 동시에 먹골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아서 더욱 역할에 대한 의문이 남음  

(물론 이 자체로 어떤 세대에 대한 연민이나 혐오를 읽어낼 수 있지만,  그렇게 보면 오래전 시대 감각을 오래된 방식으로 그리는 게 아닌가) 


소설의 시작은 ‘그 집의 죽음이 하필 그날 아침에 생각난걸까?’라는 비장함과 달리, 

흔한 시골 풍경이나 어느 시골집에서나 전해 내려올 법한 서사기에 점차 매력이 반감되는데   

이때 과거가 아닌, 화자와 동생이 행동하는 현재 상황이 명확하거나, 매력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마저도 진부하게 읽혀서 아쉬움이 남는다.       


-옛날 이야기 한다-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해소되지 않는다-이야기를 끝맺음하려고 거듭하지만, 이야기는 반복된다, 가 주된 흐름인데, 이와 맞물려 가는 시의성을 가진 현재 문제들이 끼어들어 산발적으로 흐른다.      


가령 혐오, 세대갈등, 코로나 같은 재앙의 시대를 단편에 욱여넣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하나의 소재 만으로도 단편 서사의 무게는 충분히 갖는데 사회적 주제가 맥락 없이 섞여있어서 소모적으로 쓰이고 휘발되는 게 아닌가. 


한 시대를 보여주는 관점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 마저도 난해하게 읽히지 않나.  

(어느 쪽에서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 더하기) 마스크 안 쓰고  편의점 앞에서 노래 부르면 혼나야지... 편의점 알바생에게만 감정이입...^^;;;          


-악다구니 쓰는 엔딩이 진짜 오열에 가까운 먹먹함이 전달됐으면 모르는데      


-결과적으로 큰 서사는 ‘내가 배롱나무 동네 이야기를 계속 한다’- 인데 해당 이야기가 메인처럼 안 느껴지고 소품으로 전락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만 덧대는 방식이라 양쪽 다 안 읽히는 게 가장 아쉬움.     


청자를 딸이나, 손녀 같은 한 세대를 떨어트려 놓았다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게 노인 혐오든 세대갈등이든)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임현

 

-오명조 사건,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 문제가 생겼다    이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가 소설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A교수가 화단 청소하는 것을 보고 화자는 옅은 수치심을 감수하고 같이 치운 뒤, 제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하는데 이때 교수는, '내가 모은 걸 왜 자네가 뺏어가나'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음.

인간이 호의를 포장한 비굴함을 보여주는 미묘한 지점이라 장면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짐.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다른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나와 상관없는 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

침묵의 다른 이름은 방종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침묵 이후 종국에는 나를 옹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소극적 비호라는 데 수긍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침묵하는 것이 동조하는 것 같다는 문장에 시선이 머무름.      


사람한테 국그릇이라니....내 웃음 지뢰...

-해당 작가의 특기이자, 저렇게 설명하기 불분명한, 기로에 놓여있는 감정을 

장면이나 진술로 명확하게 짚어내는 데서 읽는 사람은 희열을 느낄 수밖에.                        

      

-특히 당신이 뭔데 그런 일을 해, 는 그런 말을 들어서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주인공의 마음과 의롭고 싶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양쪽 다 그 순간의 진정성이 압권이었고, 


-동시에 모든 인간이 자신과 관계가 있다, 혹은 내가 직간접 양향이 있는 거 같다, 는 생각이 들면 절대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연재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전혀 다른 것을 상상한다. 상황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 다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문제적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타인의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전개 또한 차근차근 설득력을 쌓아간다. 


그런데 임현이 그리는 소설 속 인물은 윤리와 비윤리 사이를 오가는데, 그 마저도 강박이 아닌다 싶다. 

인물이 윤리적일 필요보다는 설득력이 중요한 게 아닌가. 

그래서 가끔 화자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또 소설의 킬링 포인트이기도 한듯

('목견'이나 '그 개와 같은 말') 


*덧)  임현의 베스트는 '고두'보다 단연 ‘목견’이다.            




내 첫 번째 거위_ 최민경


-사회적 약자의 표상 같은 인물들을 넣어놓고 나열하는 방식의 전개라서 다소 구성이 아쉬움. 

특히 이 가운데서 의외성이 없어서 읽으며 어떤 영상의 에필로그 혹은 인물 설명처럼 느껴짐     


-단순한 구도와 교조적인 메시지, 직업이 인물정보로 활용된 것도 아니고 소모적으로 쓰이고 휘발되어서, 

어떤 콜센터 직원의 하루를 따라간 인상      


-상직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부분은 마술쇼인데. “나는 바닥에 떨어진 희고 가벼운 깃털 하나를 주워 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종현의 마술쇼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고” 정도로 정리되는 바람에 단순한 소재로 쓰이고 휘발. 여기서 화자의 진술이 덧붙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 속 화자가 한 세계와 작별하는 방식을 역대급으로 잘 그린 작품은 윤이형의 ‘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이름 없는 마음 김유나 (무료 공개 중)


심사평



-어린 시절부터 아픈 손가락이자 좀 모자란(?) 동생을 남편과 대면시켜야 하는 여성 화자. 


-예고된 실패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이를 봉합(정말 봉합이 아니라, 봉합을 위한 시도와 그 과정)인데 

그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그려졌는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음     


-현권이 떠난 시점에서 소설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현권이 올 것이라는 데서 소설이 시작되어서 다른 인물들의  서사가 끼어들어야 하는게 나은 구성이 아닐까.      


-동생을 제외한 인물이 전혀 입체적이지 않은 것도 그렇고,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지긋지긋함을 왕복하는 주인공의 미묘한 지점은 명확하게 포착되지만, 

그 고군분투의 감정 서사가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서 얽히기 시작하는지 전혀 읽히지 않음. 

(불친절한 것과 별개로 ‘동생에 대한 마음’이 드러날 만한 사건 자체가 없음, 대부분 과거 전사 처리한 것도 아쉬움.)     


현권은 (설정부터) 부족한 아이고, 그래서 이해하고 화자가 단속해야 한다는- 작가가 부여한 인과성이 아닌, 

독자가 따라갈 만한 감정이 부재하지 않나. 

(덧, 소설 전반이 유년기에 치우쳐져 있어서 더욱 현재가 안 읽힐 수밖에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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