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처음 배울 때, 직진이 가장 수월했다. 파란 불이면 엑셀을 밟아 달리고, 노란 불에는 다음 신호에 대비할 준비를, 빨간 불에 멈춘다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 있기에 앞만 보고 달리는 건 가장 수월한 주행방식이었다.
주변에 성인이 되자마자 면허 시험에 응시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면허를 딴 시기가 그보다는 늦었다. 학원비를 감당하기엔 부담되기도 했고, 당장 차를 몰 일도 없어서 관심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졸업 후 입사한 회사가 신입 디자이너도 출장과 외근이 잦았기에 새벽에 일어나 운전 면허학원의 픽업 차량을 타고 면허학원으로 향했다. 동이 채 터오기 전, 잠이 덜 깨 어둑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타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길로 선택해서 갈거야,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어’고 호기롭게 다짐하곤 했다.
야근 잦아 학원을 결석하게 되면 실습 스케줄 조정이 이뤄졌고, 그때마다 담당 선생님은 교차되었다. 그렇게 육개월이 되어서야 도로주행 실습이 끝나고 드디어 면허 시험 자격이 주어졌다.
면허를 딴지 올해로 14년이 되었다. 지금도 ‘도로주행연습중입니다’란 후면 창에 붙은 스티커와 전면에 노랗게 도색된 차량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온 구형 빨간색 아벨라는 초보 운전자를 만나 숱한 수모를 겪었다. 빨리 달리지 않는다며 창문을 열고 욕하고 지나가는 트럭 운전수들, 신호 변경을 늦게 알아채서 횡단보도에 정차하게 되었을 때 차를 주먹으로 치고 가는 행인들, 차선 변경할 때 양보를 한 번에 받는 일이 흔치 않았다.
숱한 일을 겪다보니 아무 사고도 내지 않는 사람을 왜 베테랑이라고 하는지 자연히 알게되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가야할 때 가고, 멈춰야 할 때 멈추는 일상에서 호흡하는 것만큼 익숙해졌다. 하지만 비보호 신호 앞에서는 아직도 종종 숨을 참게 된다. 초록불이 점멸하기 전에 오롯이 운전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들어갈 때를 스스로 인지하라는 비보호 표지판을 볼 때마다 나는 15년 전 학원 봉고차 안에서 다짐했던 순간이 두근거림과 함께 떠오르곤 한다.
반대편 차량의 속도를 가늠하고, 핸들을 꺾어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엑셀을 밟는다.
나는 언제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가 가고자하는 의지만 있다면.
*시각예술모임 <노뉴워크>에서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주제로 적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