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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29. 2024

고양이 선생님

비가 내리던 날, 아이는 어린이집에 그림책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집 적응하는 나이에는 애착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등원하는 게 허용되는 시기가 있는데, 아이는 만 3세 반으로 그 시기를 훌쩍 넘긴 터라 아침마다 장난감을 가져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왜 가져가면 안 되는지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책은 예외였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도 아이가 책을 볼 때마다 독려해 주셨고, 때때로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모아두고 함께 읽어주시기도 한다고 해서 아이도 어린이집에 책을 가져가는 걸 즐거워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큰 사이즈의 그림책을 골랐는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어린이집 가방 크기보다 큰 숀탠의 '도착'이거나 김삼현 작가의 '뿜빠뿜빠 노래하는 자동차'였을 거다. 둘 다 아이가 꽤 즐겨보던 책인데 특히 자동차 책은 표지가 내지와 분리될 정도로 즐겨 읽었다. (책에서 노래하는 덤프트럭이 '도'음을 내는 역할이라, 아이는 오래도록 덤프트럭을 '도 빠방'이라고 불렀다.) 마침 비도 내려서 우산도 챙기고, 등원길에 소아과에 들러서 처방약을 받아가야 했기에 큰 책을 가져가야 한다는 게 마뜩지 않았지만, 사소한 귀찮음으로 책에 대한 즐거움을 잠재우는 몰인정한 엄마는 되기 싫어서 가방에 그림책을 넣고, 자크를 열어둔 채 소아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아과로 향하는 동네 골목을 지나갈 때 즈음, 나직이 "선생님"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어린이와 동행하는 나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쓸 리는 없다. 편의점에서 통로에서, 거리에서, 걸음이 바쁘니 길을 비키라 뜻으로, "아줌마!"라고 부르는 걸 들어는 봤어도, 선생님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랬다. 하지만 두 어번 더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운동복 차림의 중년의 남성 분이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말하던 것이었다.

"선생님, 애기 가방이 열려 있어서요. 안으로 빗물이 들어갈 것 같아요."

"아... 아. 네에. 고맙습니다."

나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해서 즐겨 쓰기는 하나, 저 세대의 남성에게서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는 건 난생처음이라 생경했다. 순간 당황해 놀란 표정을 감추느라 "책이 커서 가방이 안 잠기네요."라는 말을 했는지 조차도 생각이 안 났다.

삼십 대가 되면서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00님'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한 시기가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존중하는 무게감에 만족하며 사용했다. 이후 마흔을 앞둔 시점부터는 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선생님'이란 호칭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스튜디오에서도 드로잉 수업을 열어 수강생분들을 만나면 1회 차 때 서로서로 '00 선생님, 00쌤'이라고 부르기로 제안한다. 비록 그림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로 처음 만났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하고, 깨닫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인생에서 선생님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인연을 맺으니 조금 더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선생님'은 고마운 호칭이 되었다. '아줌마'를 멸칭으로 사용하는 시대에서 선생님으로 불러주시다니, 성별을 떠나 그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홍제동에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주민이 많다. 동네 골목 사이사이 접이식 수레에 빈 햇반 그릇과 물, 사료를 싣고 식사 제공하는 코스를 시간대별로 바삐 도는 캣맘도 계시고, 동네 어린 고양이들이 굶을까 봐 퇴근길에 고기를 챙겨주시는 캣대디도 있다. 요즘엔 이 둘을 합쳐 '캣피더'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외래어라 그런지 아이와 대화할 때 사용하려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들을 '고양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매일 아침 등원길에 마을 버스정류장 앞 화단에서 고양이의 끼니를 챙겨주시는 한 주민 분을 만났는데, 매일마다 만나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아이는 먼발치에서도 "고양이 선생님이다! 고양이 선생니임!"하고 반갑게 달려가기도 한다. 고양이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는 길 고양이와 인사하는 법을 배웠고,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는 경험을 해보는 호사를 누려보기도 했다. 

관계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고양이 선생님과 나는 들개에 물려 크게 다쳤던 고양이를 함께 구조해 병원에 다녀오기도 하고, 종종 마을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이름만 알 뿐, 직업과 나이는 모르지만,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생기게 되었다. 이 호칭을 사용하면서 열리는 세계는 제법 따스한 편이다.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서 그림책을 읽어주고, 호기심을 채워주고, 친구 사귀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하고, 서로의 안전과 안부를 물어보자. 아직도 이 따스한 세계를 열어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적극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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