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를 임시보호를 맡았던 3주 동안 우리 부부는 이 작은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말이 임시 보호이지, 입양 고민을 위해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요즘엔 현실적인 문제로 반려견을 기르겠다고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입양 전제 임시보호'라는 말도 사용하는 듯 하지만, 당시에는 입양을 위한 심사도 까다로웠고, 무엇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한 생명을 책임 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봉사자 분들은 우리 부부가 포카를 입양할 줄 알았다고... 오랫동안 보호소의 아이들의 입양을 담당하다 보니 생긴 촉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책임감 있게 봐주신 것 같아서 감사했다.
우리가 포카의 입양을 결정지은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예뻐서, 눈에 밟혀서, 정이 들어서’라고 하기엔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 봉사자분들이 포카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셨을 때, 무릎 담요에 누에고치처럼 돌돌 싸맨 작은 포카를 남편의 품에 안겨주었는데, 남편은 포카를 처음 안아 들었을 때의 무게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나는 포카와 헤어지면 포카의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야 집 안에서 생활하며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막 익혔는데,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되면,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다. (그것도 영어로!)
이렇게 각자의 이유로 입을 모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책임을 져보자고 했다. 입양 서류에 사인을 하고, 포카가 법적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 불안감은 떨쳐내고 행복해져 보기로 했다. 우리는 포카를 안고 신나게 춤을 추었다. 당시에 포카는 아무것도 몰랐을 테지만, 이후에 거실 서랍장 하나를 비워두고, 포카 앞에서 포카의 옷을 넣으며 여기가 “포카 자리야.” 하고 일러주었는데 그제야 기쁜 듯이 깡충깡충 뛰었다.
새 이름을 지어줄까 싶어 고민했지만, 포카에게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나 다름없는 이름이라 그대로 따라 부르기로 했다. 마침 자기의 이름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포카를 보니 그것대로 기특하고 예뻤다. 이후에 알게 된 건데 천주교 성인명에도 포카(포카 Poca, 포카스 Phocas)가 있더라. 순교 성인의 직업이 정원사였던 것처럼, 포카도 봄날에 풀 뜯기를 좋아해서 알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포카와 함께하며 볕을 쬐고, 바람을 느끼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찰나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봄에는 새싹을 따 먹고, 여름엔 그늘을 찾아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을에는 온몸에 도깨비바늘을 붙인 채 낙엽 위를 달리고, 겨울에는 눈 위의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과 일상의 해프닝이 나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했다.
포카와 함께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거의 매일같이 포카를 드로잉 했다. 그 사이 우리 집에는 새 식구가 한 명 더 늘었고, 우리 가족을 드로잉 한 종이가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함께해 온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포카도 포카의 나름대로 시간의 흔적을 확인하듯 까맣던 배와 입가에 하얀 털이 돋아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