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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Han Feb 27. 2019

음주는 만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TV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진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회자가 한 패널에게 질문을 한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질문을 받은 사람은 수줍게 웃으며 '보통 소주 4~5병까지도 마시는데 요즈음에는 바빠서 잘 못 마셔요'라고 답한다. 이에 다른 패널들이 동참하며 '애주가 시구나', '나는 동료 연예인과 밤새 20병도 마셔봤다'와 같은 후일담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 연예인은 소맥을 만드는 개인기를 선보이며 다음 코너로  넘어간다.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예시는 한국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답 패턴이다. 혹시 여기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필자는 큰 괴리감을 느낀다. 유독 술에 대한 대한민국 TV 방송의 허용기준이 다른 것(선정성, 폭력성, 담배, 유해약물 등)에 비해 관대하기 때문이다. 흡연 장면이나 폭력적 장면이 포함된 콘텐츠의 경우 낮시간대의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은 물론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까지도 아예 삭제되거나 부분 모자이크 처리가 된다. (모 애니메이션은 담배를 사탕으로 바꿔버리는 연금술적 편집을 하기도..) 하지만 술을 마시고 만취하는 장면은 대부분의 콘텐츠에 항상 여과 없이 방영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술에 관대한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윤창호 법'과 같이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가 가해자의 방패가 되지 않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덕목이라 여겨졌던 직장인의 회식문화에서도 술은 점차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실제의 생활에서의 과음에 대한 주의와 경각심은 커져가는데 왜 유독 방송에서의 술에 대한 관념은 7, 80년대식의 '과음=애주가'(혹은 경외의 대상) 공식으로 일관되는 것일까?


기성세대들의 과음 문화와 그 물림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중추적 역할은 40~60대의 시니어들이고 이들의 발언이나 행동은 어쨌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발언은 10대 청소년들에게는 큰 파장을 일으키는데, 이들이 매체에서 하는 술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소주를 과음해서 일어나는 해프닝에 기반한다. 그리고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이야기에 약간의 과장을 섞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과음이 자랑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는 유명인의 발언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술은 원래 저렇게 먹는 것이구나'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최근 한 예능에서는 출연자가 개인기라며 방송 중 소맥을 만들고 그걸 다 같이 먹는 장면이 15세 관람인 예능에서 여과 없이 방송되기도 했다. 만약 그 연예인의 개인기가 담배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것이라면 방송에 나갈 수 있었을까?

 방송의 심의규정을 하는 기관이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는 흡연을 하거나,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장면은 안되고, 음주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필자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 과음해서 기억을 못 하고 사고를 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이 폭력적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파급력이 크고 장기적 관점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의 음주문화를 과음에서 탈피시키고자 한다면, 방송에서만큼은 연예인의 술자리 만취에 대한 '무용담'식 발언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런던 Camden 양조장의 맥주파티. 남녀노소와 애완동물까지 구분없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가득하다.


다양해질 필요가 있는 술 문화와 인식

 기존의 세대들이 즐겼던 제한적인 음주 방식이 고착화되고 공식화되어있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7~80년대의 서민의 술이 취하려고 마시던 소주와 한 두 종류의 국산 맥주였다면, 현재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맥주와 와인, 고급술이라고 여겨졌던 수입 위스키 까지도 동네 마트에서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즉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술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고, 그에 따른 음주 방식이나 문화도 충분히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만들고 술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간혹 지인을 통해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소개될 때 항상 받는 질문은 '술 잘하시겠네, 소주 몇 병 드세요?'로 시작된다. 물론 소주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어떤 술을 즐기시나요?'라는 질문으로 술에 대한 즐거운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술은 과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적당히 취했을 때 기분 좋은 나른함과 약간의 용기, 말수가 적던 사람도 입을 열게 만드는 술의 힘은 묘약과도 같다. 하지만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했을 때 생기는 사고와 망가지는 몸은 독약이다. 만취로 인한 소소한 사건이 때로는 누군가에 재미있는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크나큰 악몽이 되기도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모든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이 대중 매체라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과음에 대한 맹목적 미화를 줄이려는 최소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소주를 마시지 않아도,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마시지 않고도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더이상 과음의 추억이 미덕이 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한국의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인 '주인공이 만취해서 내뱉는 애교 섞인 투정과 실수로 사랑이 싹트는 장면'은 이제 자주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술=소주=주량 자랑' 식의 방송 또한 그 정도를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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