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는 이유로, 가을에 오는 어떤 쓸쓸함을 미리 준비해야 할 때가 있다. 여름에 왕창 피었다 지는 감정의 동선을 곱게 개어두면서 어느 정도는 한 사람의 공백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내겐 여름 끝에서 꼭 맞이해야 하는 숙제나 관례 같은 것들이다. 한여름에 당신을 추억했으니, 가을에 다가올 당신 또한 잘 대비해야 하질 않는가. 사랑이 바닥나고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면, 이처럼 춥고 따뜻한 당신의 계절에서 벗어나 여름에서 저 가을로. 지난여름에서 다음 가을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달까.
계절이 바뀌는 순간은 숱한 사람들의 향기와 같이 온다. 지나온 사람, 지나가는 사람. 지나갈 사람. 손톱으로 풀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쉽게 풀기 힘든 실타래처럼. 내가 겪는 관계에 늪에서 꼭 나에게 맞는 절기인 듯,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관계가 이어지고 끊어지고 만다. 나는 그런 변화에 징조가 계절이 주는 향기와 사람이 주는 채취에 있다고 본다. 좋고, 행복하고, 기쁘고, 아름답지만 꼭 마지막인 것 같은 직감이 있는 것이다. 그것 또한 인간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이자 몸부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기에 반응하고 동요하며, 내 앞에 있는 당신도 그렇지 않냐고, 그 순간에 대해 간접적으로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간접적인 질문이었기에 변두리에서 답변이 돌아온다. 순간은 사람과 시간에 의해서 변화한다. 순간이 다르기에, 정확히는 순간의 질감이 다르기에 모든 계절이 같을 수는 없다.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계절이 그런 척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랑이. 후에 설명까지 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모든 순간은 후회하기에는 아깝다. 아직은 이따금씩 나의 순간이 아닐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은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려 계절을 빌린다. 어떤 날의 웃음과 계절의 끈끈한 향기를 타고, 당신에게 흐른다. 순간이 당신을 기억하고 내가 그런 순간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때 그 모습으로 나타나 있어 준다. 별말 없이 나무의자에 앉아있다가. 더는 떠나간 당신을 미워할 수 없도록 그때부터 순간이 닳는다. 이제는 떠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