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나 Oct 15. 2024

경전반 수행일지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23.10월 딱 6개월만 쉬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6개월을 준비해서 6개월 후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둔 이유는 학원강사로 일하다 보니 저녁시간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것이 컸고, 사실 학원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마음도 컸다. 어쩌면 이것이 불씨가 되어 내 아이까지 갔는지도 모르겠다.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적금도 깨고, 보험도 깨고 시작한 휴직이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자꾸만 초조해진다. 


내 마음이 초초해지니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남편이 돈이 없는 것을 알고는 시작했다. 결혼할 당시 내 마음은 '꼭 남편만 돈을 벌어야 하나? 난 여느 여자와 달라 내가 벌면 돼'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인데, 요즘 내 마음이 조급하니 나의 부족함을 조금도 채워주지 않는 남편이 너무 밉다. 돈을 못 벌면 집안일을 잘하던지 아니면 아이한테 좋은 아빠이던지 그저 집에 오면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시간되면 야구경기만 보는 남편이 정말 미워죽겠다. 


아이를 낳은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아이를 통해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틈만 나면 아이에게 화가 난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 전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크지 않는 아이에게 계속 화가 나있다. 


그 무엇도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하물며 내 마음조차도, 그래서 계속 화가 난다. 때로는 눈물이 난다. 


예전에는 감사일기를 쓰면서 노력을 해보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안에서 화가 차오른다. 

어차피 그 사람은 이런 내 노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결국 나만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인 것을.


모든 것이 엉망인 것 같지만, 한 가지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108배를 10년째 계속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주말에는 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기면 놓치곤 하지만, 너무 바쁘면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너무 피곤하면 늦잠 자느라 한 끼 거르듯이 그렇게 108배는 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8배를 하면서 순간순간 깨달아지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 싫고 화가 나고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그렇게 원망만 하고 있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남편을 보면 예전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누워있는 곰 같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나의 상황을 원망만 하고 있고, 상황이 저절로 좋아지기를 기다린다면 내 모습이 과연 그 곰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분노, 미워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으면 얼마든지 해도 되겠지만, 결코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나는 수행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선 나부터 잘하자. 남편과 아이에게 화가 나는 마음이 크지만, 그렇다고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깊이 들여다보면 가장 크게 미워하는 것은 나 자신이리라,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밉다. 


타인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멈추고, 나 자신을 먼저 보리라 다짐해 본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이다. 세상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이 존재하는 그대로 내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했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미움이 올라올 때마다 STOP이라고 외치리라. 그리고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리라. 

그것으로 나의 수행을 시작해 보려고 하다. 

작가의 이전글 불대 졸업 10년 후 경전반을 다시 시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