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나 Sep 08. 2024

불대 졸업 10년 후 경전반을 다시 시작하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스스로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한 10년 동안 질질 끌어오던 공무원준비를 포기하니 34살이었다. 

그동안 간간히 일을 하긴 했지만, 나의 본업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34살의 나이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정말 막막했다.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법륜스님이 운영하시는 명상수련원을 다녀오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정말 간절하게 행복해지고 싶었다. 

더 이상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습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마음가짐이 바뀌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가 운이 바뀌는 때였는지, 불대를 다니면서 나는 내 삶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원하는 외국계회사에 입사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들을 겪으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럭저럭 잘 살아오고 있었다. 

보통은 불대를 졸업하고 경전반까지 많이들 가시는데, 불대 다니면서 나는 내 삶에서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갔기에 하루하루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굳이 경전반까지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고, 일상의 흔들리는 마음들은 108배로 조금씩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맘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인간관계가 한정적이었다. 직장과 가족과 그동안 알아오던 친구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아이의 친구로 인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겨나고, 아이도 커감에 따라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마음이 속상한 상황이 비교적 1차원 적이고,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로 한정적이고, 또래 친구와 있었던 일도 비교적 1차원적인 일들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규범의 잣대로 충분히 해결가능한 일들이다. 마음 조율이 안된다면 안 만나면 그만인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 아이가 좀 늦은 편인데, 어릴 때 육아가 힘들다고 친구들한테 하소연을 하면 이미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지금은 나의 문제이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나 혼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슬슬  내 아이만 단속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 아이는 철수랑 노는 것이 재미가 있다. 그런데 철수는 내 아이를 이래라저래라 마음대로 다루면서 자꾸만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아이는 철수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계속 철수랑 놀고 싶다. 다만 아이가 바라는 것은 철수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노는 것이다. 그렇지만 철수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놀 수가 있다. 철수는 내 아이가 아니어도 다른 친구와 놀면 그만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고 그렇게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철수는 굳이 스스로 그 재미를 양보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함부로 하는 친구와는 어울릴 필요가 없고 다른 친구와 놀면 된다고 가르쳐도 아이는 다른 친구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그저 철수가 마음을 바꿔주기만을 바란다. 

내 아들이지만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앞으로 인간관계에서 호구가 되지 않을까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걱정이 된다. 


남편에게 아이의 상황을 의논하니 자기를 닮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툭 던진다.

순간 뜨끔했다. 

그렇다. 

아이의 그런 성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아이의 행동이 그저 답답하긴만 했는데, 남편의 그 말을 들으니 번쩍 했다.

나를 닮았구나, 

내가 나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아이는 기가 막히게 닮아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한 참을 고민하다, 마음공부를 하고 조금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온갖 마음과 감정들을 깨어있는 상태로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알맞은 해결책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아이를 지켜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의 중생의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매일 108배를 하며 꾸준히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넘어지고 보니, 진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봤으면서 코끼리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내가 보였다.

불대를 졸업하고 10년 만에 다시 남은 경전을 공부해서 코끼리의 나머지 부분도 공부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경전반을 신청하고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마음이 무척 설렌다.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웠던 감정도 마음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 불법을 만나 다행이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다시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가정의 CE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