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남편의 새벽 출근으로 우리는 각방을 쓴 지 오래다.
큰 방은 아이와 내가 쓰고, 남편은 작은 방을 주었는데, 방 하나를 옷이 차지하고 있어, 방에서 잠만 자는 남편 방에 나의 서재를 만들어 두었다.
남편이 나의 책장에 운동기구에 빨래를 널듯이 옷 갖 자잘한 물건들을 올려두어, 책이 잡동사니 뒤로 숨어버렸다.
책장에 온갖 종류의 것들이 꽂혀있다. 사진 앨범도 있고, 아이의 유치원 활동 파일도 꽂혀있고, 빈 파일들도 꽂혀있고, 잡다한 사물들이 선반에 올려져 있다.
당장 읽지 못하더라도, 갖고 싶은 책은 사 모으는 취미가 있어 이미 책장은 만석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책장에 두어야 하기에 옆으로 쌓아둔 책은 제목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내가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 지도 잊어버리고, 누군가 책을 추천했는데, 그 책을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서점에 가면 마치 그 책들이 모두 나의 머릿속에 들어올 것만 같은 황홀한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인생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종종 서점으로 향한다.
당장 입지 못할 옷이라도 사두고 모아두는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나도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도 소장하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저 지식이 나의 것이 되리라 꿈꾸며 쳐다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문득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남편의 방에서 세간살이 하는 나의 책장을 거실로 꺼내 수시로 내 눈이 머무는 곳에 두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책장 정리는 시작되었다.
책이 나의 인생을 변화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책 관련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이다.
김미경 강사의 정리 관련 책에 관한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책장도 정리하는 방법이 있었다.
가지고 있을 책과 버릴 책을 정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분야별로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리 대단히 많은 책은 아니지만 막상 정리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책이 많아, 주제별로 정리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다.
책장을 거실로 빼려면 책들을 모두 꺼내야 한다.
이참에 주제별로 정리해 보기로 결심하고, 책장 정리를 시작하였다.
책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니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좀 더 솔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투자'라는 책을 읽고 철학책을 좀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철학책 읽기는 뒤로 미루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내 서재에 이미 많은 철학책들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고 싶었고, 철학책을 읽으면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어, 철학책을 모아 왔던 내가 이제야 기억이 났다.
육아, 자기 계발서, 투자에 관한 책을 주로 사 모은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경영서적이 꽤나 많이 있었다.
내가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예전에 작은 점포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정석으로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올바른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꿈을 키웠던 나의 과거 생각들이 떠올랐다.
소설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한 때 안철수가 경영자이던 시절 그 사람이 쓴 책을 3권 정도 읽었었는데, 인간의 마음을 알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사람을 아는 것보다는 나의 성장과 발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내가 보였다.
사람의 마음도 모르면서 사람들한테 사랑받기를 갈망했던 나 자신이 참 얼마나 허황된가 싶다.
자신이 누군 인지 찾고 있는 중이라면
내가 가진 책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볼 것을 강력추천한다.
그곳에 나의 욕망과 욕구가 있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