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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Oct 24. 2017

동서남 해수욕기

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08. 02.

6. 동서남 해수욕기 


중문색달 해수욕장


  찜통처럼 습하고 더워 여름 제주는 피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름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해수욕.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때는 지금밖에 없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태양과 반짝이는 바다로 여름 제주는 하나의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


  처음부터 바다 수영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겁이 많아 아버지가 먼 바다로 데리고 나가려고 하면 소리를 빽빽 지르며 나 죽는다고 하기 일쑤였다. 무릎까지 오는 얕은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이 물놀이의 전부였다. 인식이 바뀐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제주 협재 해수욕장은 경이로움이었다. 얕고 잔잔하면서 너무 차갑지 않은 물 온도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에메랄드 색. 바다에 푹 안겨도 안전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 몸통,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까지 바다에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그 뒤로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든 바다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중문색달 해수욕장


  제주에 내려온 지 2주차. 동, 서, 남쪽의 바다에서 해수욕을 했다. 가장 먼저 남쪽은 중문색달 해수욕장이다. 대표적인 휴양지답게 샤워시설과 물품보관소가 번듯하게 있었다. 파도가 센 바다이지만 태풍이 오기 직전이어서인지 훨씬 강하고 높았다. 먼 바다까지 나가 수영하기에는 무서워 적당한 선에서 놀았지만 수영 자체보다는 파도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빵과 음료를 먹으며 기력보충을 하고 또 놀았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놀러왔을 텐데 중문 해수욕장이 이렇게 한가한 것은 어째서일까.


월정리 해수욕장


  동쪽의 수많은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 중에 구경조차 못했던 해변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월정리 해수욕장을 택했다. 표선보다는 작지만 깊은 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다에서 보면 반달처럼 보여 월정리라고 부른단다. 핫플레이스답게 매일 바비큐 파티가 벌어진다는 게스트하우스와 바, 노점상들이 화려하게 장사진을 펼치고 있었다. 혼자 수영이 익숙해지니 파라솔이나 돗자리를 해변에 깔지 않아도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는 장소에 신발과 물 한 병, 간식거리, 모자를 가지런히 포개놓고 바다로 뛰어든다. 몇 시간이고 놀아도 물건들은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해변에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도둑을 맞아본 적이 없다.


  잔잔한 파도와 들어가도 들어가도 얕은 수심. 제주의 북쪽, 동쪽, 서쪽 바다가 그렇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바다를 띄엄띄엄 본 것이었다. 흐린 날의 제주 바다는 잔뜩 성이 나서 파도를 때렸다. 수심이 깊지 않아도 파도가 세게 치니 순간순간 깊어졌다. 제주 동쪽 바다에서 이런 경험을 할 줄이야.


판포리 포구


  서쪽의 떠오르는 해수욕 명소, 판포리를 갔다. 해수욕장이 아니고 배가 드나들지 않는 포구인데 바닥이 오로지 흰 모래로만 깔려있어 수영하기 좋다. 해수욕장과 달리 항상 일정정도 수위를 유지하고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아 매우 훌륭한 자연 수영장이었다. 수위가 높을 때는 다이빙 할 수 있다고 한다.


  판포에서는 친구와 함께였다. 혼자였다면 낮은 곳에서 차근차근 걸어 들어갔을 텐데 수영을 잘하는 이 친구가 포구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입수를 하자고 이끄는 바람에 생각 없이 따라갔다. 계단을 차례대로 내려와 물로 가볍게 들어갔는데. 아뿔싸, 발에 땅이 닿지 않았다. 순간 바다 속으로 꼬르륵 들어가 버리자 너무도 당황해 발버둥을 쳤다. 친구가 재빨리 건져서 발이 닿는 곳으로 끌고 가 망정이지. 물귀신이 되는 줄 알았다.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쳐 가장자리의 수심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겁을 먹었지만 눈앞의 바다가 너무도 유혹적이라 다시 뛰어들었다. 물을 좀 먹으면 어떠리.

  자유형, 배영만 할 줄 알았는데 친구가 잠영을 가르쳐 줬다. 바다 속을 구경하며 물살을 느끼는 수영. 수영을 하려면 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힘을 쫙 빼고 몸을 맡겨야 한다. 물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힘을 빼야지만 앞으로 나가고 물살을 타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몸에 힘을 주는 순간 물 밖으로 쫓겨난다.

  눈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놀다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친구가 끌고 나왔다. 아직 8월이고 제주에 있는데 벌써부터 이 바다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 


2017. 8. 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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