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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Mar 09. 2022

휴직의 이유

나를 설득하기

휴직을 결심한 것에 결정적인 이유는 없다. 못 견딜 정도로 힘든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오랜 시간 동안 1년의 휴식을 계획해 온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이 아니면 늘 그랬듯 적절히 상황을 견디고 적응할 것 같았다. 


익숙한 일상의 반복은 권태다. 그러니까 내 시간 대부분에 권태로웠고 늘 비슷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방향을 바꿔 보고 싶었다.  '굳이 왜?'라고 가장 강하게 묻는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모호하고 어렴풋한 감정만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 나는 이 결정의 이유를 찾았다. 




지금껏 내 삶의 주된 가치는 '소속감'과 '안정감'이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유년기에 생긴 마음의 공백 때문이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지나치게 애썼다. 어느 순간, 외부의 인정으로 텅 빈 곳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 이후에도 내 삶은 여전히 소속감과 안정에 뿌리내린 상태였다. 


유년기의 경험으로 형성된 가치는 진정 내 자의에 의한 것이었을까. 그때의 판단은 오롯이 내 몫이었을까. 단연코 아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내내 어른들과 사회에서 주입한 관념에 휘둘렸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형성된 무의식에 끌려다녔다.


애초에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 그 가치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의구심이 든다면 한 번쯤 확인해야만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유년기에 나도 모르게 형성된 가치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다.


그동안 추구해 온 가치가 더 이상 내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여러 가지 가치들이 있겠지만 현재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장은 나의 안전지대를 넓히고 그릇을 키우는 일이다. 내가 단단하게 다져놓은 울타리를 넓히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나는 안전하다. 그러나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안전한 곳에서 나와 몸을 던져야 한다. 익숙한 곳에서 시야를 돌리는 것 외에 안전지대를 넓힐 방법은 없다.


내게 세상은 여전히 낯설다. 울타리 밖을 벗어나면 겨우 확보한 이 영역마저 사라지고 다시 마음의 공백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나에게 세상은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라 영역을 지켜야만 하는 곳, 최악을 대비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내가 소속감과 안정감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어쩌면 이 관념도 틀린 게 아닐까. 어쩌면 세상은 내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자 안전한 곳이 아닐까. '성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자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니까 내 휴직의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궁금하다. 세상이 정말 안전한 곳인지. 내가 뿌리내렸던 소속감과 안정을 떠나서도 추락하지 않는 곳인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1년의 휴직을 결심했고, 거창하게 '성장'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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