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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Apr 01. 2022

휴직 한 달 후 알게 된 것.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휴직을 하고 한 달. 3주까지는 정말 행복했다. 1년의 시간이 다 내 것이라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니. 

무엇보다 출퇴근에 대한 걱정 없이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 있고 눈 떠질 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도 놀랄 정도로 내가 직장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이 사실은 장점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직장을 가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지만 대신 그 시간을 나름의 ‘의미’로 채울 일 할 거리를 제공받는다. 직장을 다니며 출퇴근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내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휴직을 하면 특별한 것 없더라도 밀린 책을 읽는다든가 영화를 보는 소소한 행복을 한동안 누릴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그 소소한 행복은 퇴근 후에 누릴 때는 달콤했지만 일상이 되고 나니 권태롭기는 매한가지였다.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느낀 권태와 일상의 굴레에서 느끼는 권태의 무게는 결국 같았다. 휴직 후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안전지대를 넓히겠다는 것도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됐다.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행하기 위해 그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직장인의 리듬에 익숙했고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3주 동안의 휴식 끝에 내 삶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건 그동안 직장에 많은 부분을 의탁한 내 탓이라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안전지대를 넓히고 더 성장하기 위해 휴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내 안전지대는 6평 원룸처럼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두고 밖을 나가 홀로 선 것이 처음인 것이다.


4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지속하다 어느 순간 그마저 하지 않게 되었다. 넘쳐나는 시간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조급했다. 매 순간이 빛났으면 했는데. 내 삶에 일 년 정도는 여유롭게 지내보고 싶었는데. 내 마음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다 한 가지 의문에 닿았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면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매 순간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더라도 삶의 작은 환희를 깊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아지길 바랐는데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긍정적 감정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동안 내가 불행을 동력으로 써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껏 내 삶의 동력은 결핍이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서 그 아픔을 원동력 삼아 삶을 지속시켰다. 그래서 심리학을 파고들었고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썼다. 어느 정도 결핍이 해소되고 삶을 꾸려 나갈 자신이 생겼을 때, 더 좋은 것들이 들어찰 줄 알았던 공간은 텅 빈 채로 남았다.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열정적으로 몰두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열망은 아픔을 해소하는 것에, 내 결핍을 채우는 것에 그쳤다. 그러니 긍정적 감정으로 몰두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낯선 일이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 역시 습관일지도 모른다. 행복이 도달해야 할 어떤 상황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 감정을 동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휴직을 하고 넘쳐나는 시간 동안 거창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내게 필요한 것은 행복을 하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는 일상의 습관이다. 이제 텅 빈 마음에 새로운 동력을 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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