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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16. 2023

나의 난소생존기(8)

단골 카페에서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산책 후 카페에 들른다. 바닷가 근처 작은 학교 앞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과자나 케이크는 팔지 않고 커피, 차만 판매한다. 그곳의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좋아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가끔 손님이 없을 때면 사장님은 샤인머스캣을 작은 컵에 담아내어주곤 한다.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괜히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기도 한다.


 평일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부면 괜히 부럽기도 했고,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치료의 기간이 더 길어지면 어쩌나 불안해지기도 한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분히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마음의 흐름을 지켜봤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나를 다독이면서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다. 그 눈물은 심장에서 올라온 눈물이었을까, 더 깊은 곳에 쌓였던 눈물이었을까. 슬픔을, 불안을,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던 과거의 나를 대신해 지금의 내가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예전부터 나는 한 군데 오래 머물게 되면, 늘 그 주변에 단골 카페를 만들었다.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바닐라라테 같은 차가운 커피 음료를 마셨다. 하지만 난소암 진단 이후,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 알려진 우유는 최대한 피했고 차가운 음료도 마시지 않았다. 단골 카페를 만드는 습관은 여전했지만 마시는 음료는 달라졌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장점은 오랜 시간 공들여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마시려 컵을 들기까지의 시간에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일까, 유독 이번 단골 카페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암환자가 된 이후, 당연했던 것들이 매우 소중해졌다. 특히 사람들이 그렇다. 오랜 친구가 가발을 사주고 싶다고 연락해 왔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연락 와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요즘 항암은 견딜만하더라고요.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두려운 내 마음을 누군가는 읽어주었고, 누군가는 배려하기 위해 모른 척했다. 그들 모두가 고마웠다.

어릴 때부터 혼자 견디는 것에 익숙했다. 자존심 세고 밝은 척하는 것이 마치 진짜 나라고 나조차 착각할 정도로 힘든 것은 혼자 견뎠다. 하지만 내가 '일상'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에서 배척당하는 듯한 기분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무너지곤 했다. 놀랍게도 흔들리는 나를 잡아준 것은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사실 나는 스스로를 가둔 채 외롭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병에 걸리기 전 일상에서의 나는 늘 조급했다. 내게 일어나는 상황을 낱낱이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렸고 여유로운 척 하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완전한 멈춤의 상태에 있다. 잘 쉬는 게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평일에 노는 삶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스스로 기쁨에 취해 이 합법적인(?) 휴식의 시간을 즐기다가도 이 기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난소암 진단을 받자 "세상에 내 일 아닌 게 없네."라고 했다. 암은 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자기도 아닌 딸이 암환자가 되다니.

항암을 받으며 일상에 루틴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자 이제야 엄마의 그 말이 이해가 됐다. 세상 모든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요즘의 나는 여전히 자주 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행복하고 고양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정확히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이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생각보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카페에 앉아 컵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멍하니 바라본다. 다시는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며, 천천히 마음을 훑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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