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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18. 2023

나의 난소생존기(9)

매일 하는 운동

  암 진단 이후, 나는 부모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옥상이 있다는 것이다.

 서향이라 오후 2~3시쯤 되면 서서히 그늘이 져 딱 서늘하고 운동하기 좋은 공간이 된다.

 항암을 받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들, 자연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있지만 몇 년간 산책 외에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옥상도 야무지게 활용해 보기로 했다.


 오후 두 시가 되면 요가 매트를 챙겨서 옥상에 펼친다. 태블릿으로 요가 영상을 틀어 둔다. 5년 전, 요가를 꾸준히 배웠던 덕인지 유튜브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따라 할만했다. 물론 몸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유연성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예전엔 발을 뻗은 채 허리를 숙이면 발끝까지 손이 닿였었는데 이제 허리를 숙이면서도 낑낑거린다. 언제 이렇게 굳어버린 걸까. 내 건강보다 직장에서의 일, 인간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놓기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처럼 굳어져버린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래도록 내 몸을 학대해 왔다. 어떻게든 사회적 기준이 그럴듯한 몸이 되기 위해 극단적으로 음식을 줄이기도 하고 우유만으로 버티기도 했다. 눈 뜨면 체중계부터 올라가 숫자를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 모든 게 고작 '남의 인정'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집착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인정을 얻기 위해 나를 틀에 욱여넣으면 그 틀이 결국은 내 숨통을 옥죄인다.


 옥상에서 요가를 하면서 나는 가만히 마음의 흐름을 바라보고, 숨을 쉰다. 암에 걸린 이후, 나는 '지금'에 존재하는 법을 어렴풋이 배우게 된 것 같다. 어떤 완전한 상태에 이르러야만, 성취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었다.

 편안해지는 방법은 그냥 하루하루 나를 챙기며 숨 쉬는 거였다.


 땀이 흐른 몸을 가을바람에 식힌다. 바람이 내 잡념을 데려가 준다.

 옥상 위까지 길게 뻗은 은행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아무 의미 없던 모든 것들이 사실 언제나 거기 있었다고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도 되는 걸까. 난 이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다시 불쑥, 불안이 올라온다. 그 생각도 그냥 가만히 둔다. 어쩔 수 없지. 30년 넘도록 이렇게 살았는걸. 천천히 새롭게 적응하면 돼.

 

 허리를 숙이고 다시 숨을 쉰다. 조금 더 수련하면 발 끝에 닿을 것도 같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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