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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20. 2023

나의 난소생존기(10)

13cm의 흉터

 장기유착으로 인한 개복수술을 했기 때문에 내 배에는 배꼽 아래로 약 13cm의 흉터가 남았다.

수술 직후, 실밥 제거를 할 때까지 그 부위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드레싱을 할 때에도 일부러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수술 후 두 달 남짓 지난 요즘은 샤워 후 흉터 부위를 보며 약을 바르고 있다. 붉고 선명하게 자리 잡은 흔적이 마음 아프지만 이제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예전엔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내 몸의 기준이 있었다. 몸무게는 몇 킬로를 넘어선 안되고 허리도 몇 인치 이하라야 하는 식의. 아무리 그 기준에 맞췄다 하더라도 나는 내 몸을 사랑할 수 없었다. 초라하고 병든 몸을 사랑하는 것은 마치 내가 약자라고 인정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더 혹독하게 날 채찍질 하고 몰아세웠고 그럴수록 번아웃은 자주 찾아왔다.


숨길 수 없게 배 한가운데 자리 잡은 기다란 흉터는 과거의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기준에 맞춘다 한들 강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강자와 약자라는 개념조차 무의미하다. 사실 나를 약자의 위치에 둔 건 다름 아닌 나를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는 배에 남은 짙고 긴 흉터를 보고 나를 안쓰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이제 내가 약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더는 내가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배에 커다란 흉터가 남은 것에 속상해한다. 날 위로하기 위해 요즘은 흉터 제거술도 잘 된다더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 몸에 솔직하다. 나는 끊임없이 내 몸을 비하하던 그때보다 훨씬 더, 내 몸을 사랑한다. 세 번의 전신마취를 견뎌내고, 수술 후의 회복기를 참아내고, 요가를 할 정도로 건강해진 내 몸이 자랑스럽다. 요가를 할 때마다 모든 근육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있고, 깊이 호흡할 때 배가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내 몸의 기능은 날 위해 잘 작동하고 있고 난 그걸로 충분하다.


체중을 재어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가끔 재긴 하지만 그건 항암 중 체중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일정 몸무게를 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최대한 자연식을 위주로 하고 세끼를 제시간에 챙겨 먹고 인스턴트는 전혀 먹지 않는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내 몸을 위한 거라 생각하니 금방 적응이 됐다. 물론 항암을 버티기 위함이기도 하다.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몸을 지키기 위한 가장 클래식한 법칙이지만, 이걸 정말 실천하게 된 건 아프게 된 이후다. 어쩌면 이후의 삶은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돌보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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