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문고 Oct 29. 2023

나의 난소생존기(11)

자기 계발 강박

 20대 중반부터 일을 했다. 사회생활을 십 년 조금 넘게 했으니 내게는 본래의 나 외에 사회적 자아 하나가 더 있는 셈이다. 그 자아는 맡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 전전긍긍하고 최대한 조직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한다. 덕분에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먹고살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매월 받는 급여가 주는 달콤한 안정성으로 인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는 충족감으로 인해, 어느 순간 그 자아는 본래의 나보다 훨씬 비대해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충족감'만으로 부족해지는 때가 온다. 사실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고, 필연적으로 갓생 사는 완벽한 인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정도의 충족감'은 멍청한 자기 합리화라 생각하게 되고 온갖 자기 계발서를 살펴본다. 그게 지난 2년 간의 내 모습이었다.


 나는 한자리에 앉아 멍하니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어떤 것을 꿈꾼다. 하지만 멍하니 있는 이런 상태 성공을 실현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특성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아끼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효과적 행동들을 세팅하고, 멘털도 다잡으며 차곡차곡 이루어 가고 있다 여겼다. 그 과정에서 '상상하기'와 '멍 때리기'는 내게 질책의 대상이 되었고 문학보다는 자기 계발서만 읽게 됐다


 암환자가 되고 난 이후에, 나도 놀랄 정도로 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 눈 떠서 요가를 하고 아침을 먹고 자잘한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도 시간은 남았다. 내가 설정했던 목표는 이제 먼 일이 되었고, 대신 그 시간은 다시 예전의 내가 좋아했던 것, 문학과 멍 때리기가 차지했다.


 누군가의 삶의 정수가 담긴 문장이 내 마음을 쓸어내려주었다. 때로 주인공과 함께 울기도 하고 나와 다른 또 다른 시야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 계발서를 읽은 2년간의 시간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새로운 시야를 얻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간접 체험하며 삶이 확장되는 경험.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


 지난 몇 년 간, 내가 가졌던 목표들은 정말 내 것이었을까.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식은 정말 나에게 들어맞는 방식이었을까. 천천히 곱씹으며 나는 진짜 나를 되찾고 뿌리를 내린다.

 때로 어떤 책은 내게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문장을 선물해 준다. 문학은 아니지만 제인 구달 박사의 <희망의 이유>라는 책의 구절이 그랬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절망과 기쁨 속에서도 어떤 커다란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는 믿음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로 길을 잃었던 적은 결코 없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람이, 떠도는 작은 조각을 정확한 길로 부드럽게 밀어주거나 혹은 맹렬하게 불어주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 표류하는 작은 조각이 바로 과거의 나였고, 또한 지금의 나이다.
                              (제인구달, 희망의 이유 중)


 지금 나는 목적지 없이 떠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절대, 진실로 길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던 이유가 이런 순간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삶이, 작가의 정수가 나와 맞닿아 감동을 주는 지점. 나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나를 되찾은 느낌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회의 강박에 얽매이지 않은 진짜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빨리 성공하지 않아도, 심지어 누가 볼 때 불필요하고 초라해 보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난소생존기(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