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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Nov 07. 2023

나의 난소생존기(12)

고통도 결국 지난다


 3차 항암이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났다. 힘들었던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애써 만들어둔 회복 루틴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몸에 아무 기력이 없었다. 그나마 통증이 지난번보다 줄었다는 것을 위안 삼을 뿐이다. 3차 항암 후에는 전에 없던 부작용이 생겼다. 바로 '식은땀'이었다. 자는 동안은 물론이고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식은땀이 온몸을 적실 정도로 나오곤 했다. 덥지는 않은데 땀이 나니 더 난감했다. 게다가 언제 또 온몸에 땀이 날지 몰라 가발을 쓰고 외출을 하기도 고민스러웠다.


 일주일간 집에 머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머리 쓰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아 정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온갖 ott콘텐츠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 평소엔 보지도 않는 예능을 무작위로 틀어보기도 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웃긴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대부분의 시간은 화가 치밀었다. 나만 이렇게 고여버린 것 같아서.


몸이 고여버리니 마음은 제멋대로 몸을 휘둘렀다. 다시 감정기복이 찾아온 것이었다. 괜히 눈물이 나기도 했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반찬투정을 했다. 서른 후반의 딸이 말도 안 되는 반찬 투정을 부리니 부모로선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요 며칠간의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어린 시절 못 받았던 사랑을 이렇게라도 받고야 말겠다는, 약간의 복수심으로 부모를 대했다. 그러고 나면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한없이 작게느껴진다. 지난 삶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건 결국 나를 원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는 내 투정을 묵묵히 받아냈다. 그리고 별말 없이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새로 해 주고 살뜰히 나를 보살폈다. 그럴수록 내 안의 어린아이는 더 심통 부리고 싶어 했고 다 큰 나는 겨우 이성을 붙들며 애써 과거의 나를 달랬다. 아무 일도 없는 듯 하지만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일주일이 지난 후,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감정기복도 끊임없이 흐르던 식은땀도 사라졌다.


 "오늘은 컨디션 어때?"

 "좋아."


 다른 날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식탁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괜히 머쓱해서 더 열심히 먹고 많이 먹었다. 원망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도 결국은 흘렀다. 치열하게 두려워하고 의심했던 만큼 더뎠지만 결국은 지났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지난다는 걸 믿지 못했다. 내가 이 과정을 좀 더 여유롭게 지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애써 만든 루틴을 잃을까 두려웠고, 일주일 동안 몸이 굳어 겨우 익숙해진 요가를 할 수 없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내 몸은 다시 루틴을 받아들였다. 고통스러웠던 마음도 편안해졌다.


 예전의 나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힘든 건 힘들고 과거는 절대 고쳐질 수 없을 테니. 하지만 병을 안고 살아가는 동안 알게 됐다. 내가 나를 안아주고 받아들이는 만큼,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한다. 현실이 내 마음에 들든 엉망이든, 결국은 괜찮을 것을 믿어야 한다.


아픔과 감정은 순간이지만 그 믿음은 지속적으로 내 곁을 지킨다.

아마 다음 항암 후 일주일은 좀 더 여유롭게 그 시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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