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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Nov 15. 2023

나의 난소생존기(13)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며

수술과 항암에 대한 내용으로  보려던 글은 투병생활 중의 일상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인생에   다시없을 너무  불행이라 여겼던 병과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불행일 것도 없고 그래서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


매일 자기 계발서적들을 찾아 읽던 때가 있었다. '남들처럼' 잘 살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보려 한 것이었다. 문학대신 자기 계발서를 읽고 새벽의 감성에 젖는 대신 일찍 일어나 하루의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직장에서는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됐다. 체계적으로 일을 정리할 수 있었고 실수도 많이 줄었다. 스스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도 큰 수확이었다. 딱 거기서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정도였다면 충분했을 텐데 점점 욕심이 생겼다.


'남들처럼' 더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얼른 따라잡고 싶었다. 내가 설정한 목표들을 빨리 이루고 싶었고 점점 나에 대한 의심과 재촉이 시작됐다.


원래도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았는데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재촉은 조급증과 불안을 더 키웠다. 방해받지 않으려고 세상과 경계를 짓고 담을 쌓았다. 빨리,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럴수록 '고쳐야 하는' 내 모습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나는 왜 이렇게 잡생각이 많을까. 하나하나 못난 것만 마음에 박혔다.


어느 순간,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는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휴식의 순간에도 긴장으로 경직된 몸은 풀리지 않았고 편히 쉴 수 없어 또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나는 '쉰다'라고 생각한 순간도 돌아보면 마음 편히 쉰 적이 드물었다. 내 뇌는 스위치를 끌 줄 몰랐고 계속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멍 때리기를 좋아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어느 순간 그런 나를 싫어했다. 그런 건 '남들처럼' 살기 어렵게 만드는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병에 걸리고 난 후, 강제로 쉬게 되자 날 도와준 건 내가 싫어하고 어떻게든 멀리하고 싶었던 바로 그 특성들이었다.


마음껏 멍 때리며 하늘을 보고, 하고 싶은 걸 실컷 상상해 보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으며 그 속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발견하는 시간. 그 시간들이 내 몸을 점점 회복시켰다.


한동안 투자에 열을 올렸던 시기가 있었다. 주식이 뭔지도, 부동산 투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뒤처지기 싫어서 조급하게 뛰어들었고 당연히 성과도 좋지 않았다. '남들처럼'의 기준을 벗어나 나를 돌아보니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따라잡으려 했을까 싶다.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그땐 내가 왜 그렇게 못나 보였을까.


누군가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우선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건강을 잃어보고 나서야 몸의 소중함을 알았듯, 마구 휘둘리고 나서야 내 중심이 우선이라는 걸 알았다. 병은 몸의 소중함을 알게 할 뿐 아니라 내 삶의 군더더기들도 함께 휩쓸어갔다. 병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동안 삶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요즘의 내 일상은 한없이 단조롭고 차분하다. 그 속에서 나는 고요하게 나를 돌아보고 내 중심을 다시 세워본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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