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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12. 2023

나의 난소생존기(7)

질병의 원인 찾기

 항암 후의 루틴이 자리 잡혔다. 3일 정도는 몸이 힘들어 먹는 것조차 버겁다. 멀미가 날 것 같고 소화도 더뎌 많이 먹지 못한다. 신 과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물만 먹고 버티기도 한다. 그러다 마의 3일이 지나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드러눕지 않아도 되고 산책도 할 수 있다. 3일이 지나면 나는 무조건 나가 걷기 시작한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바깥공기를 쐬면 훨씬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이후엔 당기는 모든 음식을 먹으며 살을 찌운다. 항암을 버티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빵, 짠 음식을 매우 좋아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음식은 이제 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집밥과 자연식,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삼십 년 넘게 혹사당한 몸을 되돌린다. 감정기복이 심한 날은 혼자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 시간이 이 치유의 날들을 의미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괴롭게 했던 일, 그러니까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 외에 주기적으로 나를 짓누르던 탁한 감정들을 돌아봤다. 질병을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서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원인도 찾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부모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

 가장 큰 스트레스는 부모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어릴 때 날 돌봐준 그들에 대한 책임감.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과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들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압박감과 조급함으로 마음은 늘 불안했다. 그래서였을까. 부모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도, 그들을 만나는 것도 어느 순간 피하게 됐다. 지친 삶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2. 내 몸에 대한 부정

 뇌전증 진단 이후부터 시작된 질병과 몸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난 태어날 때부터 고장 났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정신승리를 해도 나는 보통의 삶에는 스며들 수 없고, 보통의 사람들과도 다르다는 생각은 내 몸을 더 병들게 만들었다. 

 '보통의 삶'에 포함되려 노력할수록 마음은 더 고됐다. 그럴수록 건강하지도, 밝고 씩씩하지도 못한 나를 더 부정하고 원망하게 됐다.


3. 나 자신에 대한 부정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결핍으로 스스로를 타인과는 다른, 뒤처진 사람으로 인식했다. 누군가와 친밀해지더라도 나의 가장 큰 결핍은 털어놓지 않았다. 내 약점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도 나보다는 그 사람이 나아 보였다. 그 커다란 공허와 결핍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를 갈망했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내 마음의 원인을 정리해 보고 나니, 여전히 마음속에서 어린 나는 그대로 웅크리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걸 마주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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