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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09. 2023

나의 난소생존기(6)

다시 집으로

 

 항암을 받는 동안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부작용보다도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진 나는 본가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의 도움이 부담스러웠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마트에 다니는 엄마 한 명이었고 아빠는 아무 일 없이 밖을 돌아다니거나 무력하게 집에 누워있곤 했다. 예민했던 나는 온 집안에 가득 찬 두려움과 불안의 공기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며 자랐다. 그리고 자라는 내내 그 공기에 익숙해졌다.  


 그런 와중에 내가 몸을 떨며 쓰러졌고,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미안했다. 힘든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집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그 미안함만큼 나는 나를 미워했다. 보통의 삶이라는 것은 애초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몸이 미웠다. 나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느라 고생한 부모를 위해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의 공기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부모가 주는 것들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철마다 가져다주는 이불이나 반찬까지. 그 모든 것들에 가격표가 붙어 있어 내가 그들에게 되갚아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번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 차라리 안 받고 싶어서. 그들에게서 정말 독립하고 싶어서. 사실 부모의 보험을 들어둔 것도 그들의 병원비로 내가 버거워지는 일은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상상하는 최악은 늘 나의 부모와 닿아 있었고 그들처럼 살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자칫 잘못하다간 그 익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깊은 곳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부모보다 내가 먼저 암에 걸렸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간병을 받게 됐다. 그러고 나니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거부하던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다시 어린애가 된 것 같았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늘 기대하는 게 많았고 삼십 대 후반의 딸이 미혼인 것을 불안해했다. 이번에도 그러니 결혼을 해서 널 돌봐줄 사람을 옆에 뒀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을 지킬 뿐이었다.

 1차 항암을 끝내고 나자 부모의 온 신경은 내 건강에 쏠렸다. 그들은 예민해진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썼고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세끼 모두 직접 만든 집밥을 차려줬고 무료해하는 나를 위해 어색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어릴 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없는 살림에 뇌전증에 걸린 나를 위해 희생했던 부모의 모습. 치유되지 못한 내 모습은 기어이 나를 그때로 데려오고야 말았다. 

 

 담당의사 선생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병원에서 정해진 치료를 열심히 할 뿐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환자 스스로도 식습관,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원인이 될만한 요소는 고쳐야 합니다." 

 

 질병을 치유하는 데 있어 병의 요인을 의술로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애초에 원인이 된 스트레스 요인, 습관들을 바꾸는 일이다. 내 질병이 몸뿐 아니라 마음에 원인을 두고 있다면 그건 무엇 때문일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온 지금, 나는 천천히 그 마음까지 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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