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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명 Dec 20. 2017

어떻게 고양이처럼 살 것인가

그저 우스꽝스럽거나 아름답기만 한 동물은 아니다

어릴 적에는 막시무스가 그저 웃겼다. 내가 화장실에 가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는 나올 때를 맞춰 열심히 방문 뒤로 숨는다. 잔뜩 준비된 자세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숨었는데도 알 수 있는 이유는 위에서 보면 무얼 하고 있는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데, 그 사냥감이 되어 맹수의 뒤통수를 보는 건 묘한 일이다.


방문을 지나는 순간에 막시는 재빠르게 발목을 잡거나 물고 늘어진다. 알고 있으면 재밌지만 모르고 당하면 꽤나 놀란다. 막시의 장난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새끼 고양이의 특성상 발톱은 낚싯바늘 같고 이빨은 송곳 같아서 피도 자주 보았다.


몇 개월이 지나니 막시에게는 그 정신없는 유년기가 지나있었다. 대신 생각한 것보다 막시는 덩치가 큰 고양이가 되었다. 조금 뚱뚱해서 모두가 놀리긴 했지만 그의 대포알 같은 현란한 점프를 보면 강인한 앞 뒷발의 근육에 시선이 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막시는 그를 못살게 구는 나로를 제압하기도 했다. 일단 앞다리로 상대방의 몸을 감아서 무게중심을 무너뜨린 뒤, 목을 물어서 꼼짝 못 하게 방식이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을 법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막시가 겅중겅중 달리는 게 조금 웃기긴 하다.


막시를 데려오게 된 이유는 내 방에 있는 쥐 때문이었다. 작년에 나의 방이 완공되지 않아 공사장처럼 남아 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옷가지가 든 가방을 두고 여행을 떠났다. 두 달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을 열어보니 쥐가 모든 옷을 군데군데 찢어놓았다. 안 그래도 날씨가 추워지는데 따뜻한 보온재가 든 가방을 바깥에 놓아둔 것이다. 내가 쥐라도 기어들어갔을 테고 나는 쥐이기 때문에 옷을 갉았을 것이다.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면서 고양이라도 키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으셨다.


나는 지금 반려동물을 키울 (특히나 금전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거절했다. 그리고 어차피 방은 완공하면 외부와 차단되는 것이었고 이번 일은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쥐를 쫓아야 한다며 고양이를 입양했고 나는 그렇게 막시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막시무스는 여전히 뚱뚱하고 나아가서 무릎냥이 되어버렸다.



-



어느 날 문득 막시에게 밥을 주고 돌아섰는데, 웬 쥐가 화분 옆에 죽어있는 것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살펴보았다. 손가락만 한 길이에 죽은 지 오래되진 않은 회색 쥐였다. 외관은 굉장히 깨끗했다. 털에 약간의 침만 묻어 있었다. 막시가 쥐를 잡다니! 아니 그보다 걱정해야 할 건 집에 쥐가 있다는 거지만 어쨌든 막시만의 트레이닝이 그저 웃어넘길 일은 아니었나 보다. 그 뒤로도 죽은 쥐가 두 번 더 발견되었다. 고마운 게 있다면 쥐가 머리만 있다든지 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막시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쥐는 작고 빠르다. 인간은 맨손으로는 파리 하나 잡기 어려운데 말이다.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깨끗이 보내버린 걸까? 물론 이것에 관한 동물학적 지식이 방대하게 집필되었겠지만 내가 관찰로 깨달은 바를 조금 적어본다. 실험 방법은 강아지풀처럼 생긴 고양이 놀이용 막대기다.  


1. 사냥감을 포착하는 순간 고양이는 자신만의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그 게임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2.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이 숨어서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로 가는 것이다. 막시의 경우에는 문 뒤, 낮은 박스 뒤, 침대 옆처럼 눈만 빼꼼 내밀고 기다릴 수 있는 곳으로 간다.


3. 자세는 잔뜩 낮추고 웅크린다. 식빵 자세도 이 자세와 비슷한데, 위협이 있을 경우 빠르게 튀어나갈 수 있는 자세이다. 사냥할 때는 앞발을 접지 않고 가지런히 모으고, 눈은 잔뜩 긴장해서 사냥감만을 주시하며 수염 또한 앞으로 휘어진다. 엉덩이를 비롯한 몸 전체를 조금 흔들기도 한다.


4. 지금부터는 사냥감의 움직임이나 행동에 따라서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사냥감이 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 둘째는 달려 나가야 되는 먼 거리에 있는 경우, 세 번째는 멀리서 가까이 오는 경우, 네 번째는 가까이에서 멀리 가는 경우이다. 제일 좋은 것은 사냥감이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고양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앞발을 뻗어 상대를 움켜쥔다. 이때 앞발은 안으로 굽고 발톱도 세워진다. 이렇게 하면 낚싯바늘처럼 걸리게 되어 움켜쥐었을 때 빠져나가는 것이 어렵다.


5. 사냥감이 멀리 있다면 고양이는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한다. 이때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그 말랑한 젤리가 필요하다. 발바닥의 쿠션을 이용해서 정말이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다. 그런 뒤에 세 번째 경우처럼 대상이 가까이 오길 기다린다. 내가 제일 탄복했던 것은 고양이가 뛰어나가는 타이밍이다.


6. 고양이는 두 가지 경우에 뛴다. 사냥감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는 물체는 어느 방향으로 뛸지 모르는 잠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절대 상대가 멈춰 있을 때는 뛰지 않는다.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쥐가 좌우 전후 중 어느 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그 짧은 순간 동안은 다음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쥐의 입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특정 목표를 향해 가리라는 의사결정을 한 상태이다. 다가오는 위협을 읽어내고 대처해낼 도리가 없다. 막시는 무조건 상대보다 한 수 이상은 앞서 있는 상태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7. 또 한 번 뛰는 경우는 상대방이 특정 방향으로 향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이다. 이때에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자신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약간의 모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발을 뻗는다. 그렇지만 미리 방향을 읽고 움직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은 낮다.


8. 막시는 사냥감을 잡고 나면 발로 몇 번 툭툭 친 뒤에 흥미를 잃고 바로 새로운 게임을 준비한다. 다시 처음처럼 근처에서 지켜볼 수 있는 위치로 간다.



이렇게 지켜보고 나니 왜 고양이는 쥐를 잡을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고양이처럼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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