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빙자한 그리움
당신이 카레를 좋아하고, 나도 카레를 좋아하고,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가 다를 것이다, 하는. 의미부여를 우리는 참 좋아한다. 기념일은 지나가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붙잡으려 애쓴다. 크리스마스를 한껏 기다려 크리스마스가 온다고 해도, 딱히 원하는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그저 그렇게 느끼고 싶을 뿐. 그 사이에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 우리는 자정을 맞이하고 달력은 12월 26일이 된다. 그 순간, 오래 전부터 그 하루만을 위해 반짝이던 트리와 인삿말처럼 건네던 메리한 문장들, 부여된 모든 의미가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진다. 단지 날짜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나는 그런 기념일들이 조금은 두렵다.
나는 의미가 계속해서 빛났으면 한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크리스마스여서 기쁜 게 아니라, 내가 기쁘기 때문에 오늘이 크리스마스였으면.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그저 연속선상 위에서 꾸준히 걸을 뿐이니까. 하지만 무엇이 내 마음 속에서부터 오늘을 빛나게 하는지, 그걸 찾는다. 이유없이 지나가는 열 번의 크리스마스보다, 당신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가 기억나는 오늘이 어딘지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