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대하여. 주머니 속에 라이터가 있다. 이 라이터는 그냥 라이터가 아니다. 이것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이터로 성냥에 불을 붙인 다음 그 성냥불로 담뱃불을 붙이는 일도 할 수 있다. 아니면 치마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헛간을 태워 없앨 수 있다. 그저 가스 스위치를 누르고 불의 모양새를 탐닉할 수도 있다. 숲 속 외로이 떨어진 잎새에 불씨를 안겨줄 수도 있다. 뭉친 휴지 쪼가리에 빠르게 기어 다니는 불개미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 불빛이, 작은 불빛이 춤추며 얼마나 많은 생명력을 가지는지 감탄할 수도 있다. ... 꺼져가는 깜부기불. 그 불의 운명을 안다.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강 건너편 산에서는 네가 새로운 마른 가지들을, 바삭한 풀잎을 태우는 것 같다. 불타는 줄도 모르고 그 위에서 뒹굴던 날들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