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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을 Jan 02. 2024

조건 없는 사랑

8살 꼬마남자친구의 고백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아이의 작은 손을 움켜쥔 채 건너편 약국으로 향했다. 횡단보도에서 인도로 발을 딛고, 약국 유리창에 우리 둘의 모습이 비칠 때 아이는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만 행복하면 돼."

8살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비해 그 속의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순간 나는 잘 보이지도 않는 유리창에 비치는 나의 얼굴을 닦아 내고 싶었다.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일상 중에 마른 웃음 위로 설핏 보였던 슬픔의 그림자를 아이에게 들킨 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배어 나온 삶의 얼룩 덜룩한 찌꺼기들을 아이 모르게 얼른 털어버리고 싶었다.

"아빠가 그랬어.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아이는 아빠에게 들은 축복의 축원을 엄마인 나에게, 들었던 그 순간의 말 그대로보다 가늠하기 조차 쉽지 않은 크기로 뭉쳐서 내 심장에 넣어주었다.

아무 조건 없는 아이의 순수한 사랑 세레나데에 시린 가슴을 꽉 움켜잡고 목구멍에서 자꾸만 왈칵 대는 울음을 삼키느라, 감으면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감추고자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하고 시간이 멈춘 듯 애꿎은 유리창만 응시하고 있는 그동안에도 유리창 속의 아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향한 채 담담히 나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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