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안방 화장실문의 자리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안방 화장실 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 혼자 있을 땐 닫을 필요를 못 느껴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볼 때, 한 공간에 있는 누군가를 의식하여 닫힌 문 안쪽을 바라봐야 할 때 나무의 속살 무늬 팬티를 걸치고 있는 듯한 문이 보인다. 지금 저 문은 나에게 닫을까 말까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는 그냥 문일뿐이다.
닫힘과 열림의 기능에 충실한 문이지만 문 틈 사이로 손가락이라도 끼어 만렙의 고통 수치를 찍게 된다면 그 문은 그날부터 바라볼 때마다 문 앞을 꾸며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저 빌어먹을..' 같은 거?
이 문처럼 나의 일상 속에 조용히 제자리에 있다가 일련의 사건 또는 사고를 계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 어떤 감정을 덧입을지 모르는 것들이다 생각하니 주변 모든 것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의미 없던 것들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나에게 다가오려 할 때 그것들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부정보다는 긍정이 낫다 싶어 임의대로 너는 좋은 거.. 너는 더 좋은 거..이라고 먼저 선수를 쳐서 응원의 말들을 씌워주는 건 비 오기 전 우산을 미리 펼쳐 들고 있다고 막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사고를 미리 막을 수도 없다. 한번 생겨난 흉터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아로새겨진 흔적은 아무리 털어대도 떨어지지 않는다.
고통의 흔적을 제거하려 그 문을 알록달록 색칠해 보고, 눈앞에 보이는 게 싫다고 화장실 문을 떼어서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할수록, 그럴수록 누더기문만 될 뿐이다.
그냥 흘러가게 두면 된다. 그 문은 거기 있을 뿐이다. 화장실 변기 앞이 제자리다. 그 문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나만 가만히 있는 문을 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할 뿐이다.
알아차리면 된다.
이 문,
그 문,
저 문 모두 하나의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