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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Apr 15. 2020

키위들의 휴양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코로만델 여행

우여곡절을 거쳐 노트북 충전기를 픽업한 후 오클랜드에서 한 시간 반 정도만 달리면 도착하는 반도 지역인 코로만델로 향했다. 사실은 크게 들를 생각이 없던 곳이었는데, 아보카도 농장에서 첫 주에 같이 일하던 프렌치 친구가 키위 팩하우스로 옮기겠다고 갔다가 아름다운 사진들을 많이 보내줘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됐다. 뉴질랜드 사람들도 휴양지로 즐겨 찾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여행책자의 글귀를 보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곳.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템즈



영국 템즈 강과 이름이 같은 이곳은 제임스 쿡 선장이 여기에 도착했을 때 근처에 흐르는 강이 템즈와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곳인데, 정작 닮았다던 그 강은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코로만델의 입구라고 하지만 크게 볼 게 없어서 지나가는 형식으로만 살펴볼 예정이었고, 쇼핑센터에 주차가 가능했기에 차를 대 놓고 마을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마침 토요일 마켓이 열리고 있어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 여태껏 여행을 다니면서 본 마켓 중에 가장 아기자기하고 볼만한 게 많은 마켓이었다. 여느 마켓들이 그러하듯 세컨핸드나 직접 만든 장식품, 구운 빵이나 치즈, 키운 식물/야채 등을 파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작은 마을이다 보니 사람들이 여기 다 모이는 듯했다. 다들 아는 사이인지 How are you를 묻는 목소리들이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고, 한참 떠들다가도 웃으며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반려견들은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어대고,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고. 버스커들도 많았는데 신기했던 건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가족 단위 버스커, 사이좋아 보이는 두 노부부, 산악자전거를 사는 데 보탤 돈을 마련한다며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는 어린 형제도 있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마을이라니. 어느 마켓이든 항상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들렀기에 뭘 산 적이 거의 없는데, 이끌리듯 홍합 차우더를 사 먹었고 저녁을 위해 직접 키운 야채 몇 가지를 샀다.




평화롭고 조용한 콜빌


숨겨진 독서 스팟들, 엄청난 뷰!

그러고 나서 이동한 콜빌. 파도가 지척에서 철썩대는 (하지만 운전이 까다로운) 25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코로만델 타운을 지나 맨 위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워낙 멀고 coastal walkway를 걸으려는 사람들만 찾는 곳이다 보니 푸케누이보다 더 편의시설이 없음. 코로만델 반도 자체가 휴양지라서 프리 캠프 사이트가 없던 바람에, 나는 조용하고 저렴한 캠프 사이트를 찾아 콜빌로 올라갔다. 사실 coastal walkway 걸어 보려고 했는데 길 정비가 너무 안 되어 있어서 리버티가 덜덜거리며 힘들어하는 것 같길래 ㅠ_ㅠ 마침 날씨도 좋지 않아 콜빌에서 묵는 동안은 계속 조용한 바닷가들을 찾아다니며 책을 계속 읽었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동네다 보니 바닷가에 하루 종일 나 혼자 있는 일도 많았다. 숲들은 황량한 느낌이 들고. 저녁에는 캠프 사이트로 돌아와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아주 깜깜한 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보며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나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지어 핸드폰/인터넷 커넥션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는 캠프 사이트라 방해받지 않고, 핸드폰을 켜 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곳이다.




관광 거점 휘티앙아


아무 데나 캠퍼밴 뒤로 대고 책 읽기

대부분 코로만델을 찾는 사람들은 휘티앙아 근처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관광지들이 몰려 있고 숙소나 편의시설들이 잘 되어 있는 거점인 것이다. 콜빌에서 묵고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 25번 고속도로(25번은 코로만델을 한 바퀴 도는데 곳곳이 아름답다)를 지나 New chum beach에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여서 실망하던 와중에, 그렇게 이름난 비치들 보다는 중간중간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면 멈춰 서서 캠퍼밴을 뒤로 대 놓고 바다를 즐기는 게 훨씬 신나고 예측 불가능한 여행이라는 걸 깨달았다.




휘티앙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들렀던 머큐리베이의 셰익스피어클리프와 론리비치는 정말, 내가 가 본 뉴질랜드 바다 탑 5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곳이다. 론리비치에서는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상하게 구도가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친구가 아침에 여기서 다섯시간이나 시간을 보냈다며 사진을 보낸 게 생각나서 다시 메시지함을 뒤져보니, 정확히 그곳이었다.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찾아낸 나 자신 훌륭해! 나도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었지만, 여름이 다 지나가서 바닷가에 오래 앉아있기에는 바람이 조금 추웠다. 그래도 친구를 생각하며 한참 동안 바닷소리를 듣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한 Cathedral Cove에도 갔다 왔는데 역시.. 여름 다 갔는데도 관광지라 사람이 많다. 아름다운 건 물론 빼어나게 아름다웠는데, 바닷물 색만 빼면 여수나 부산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가는 길에 중간중간 숨겨진 바다들이 훨씬 내게 소중한 경험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간조 때 모래사장을 파면 온천수가 나온다는 핫 워터 비치에도 갔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 집에서 5분만 걸어 나가도 사우나를 할 수 있는데.. 물론 신기하지만 온천 자체는 아시안들에게 딱히 흥미로운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주차비도 있었기에 신난 외국인들이 땅 파는 것만 구경하다 나왔다(ㅋㅋㅋ) 코로만델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309도로도 있는데, 걸출한 볼거리가 많다는 것에 비해 운전하기가 너무 까다롭고 사고가 많은 도로라고 해서 나는 그냥 패스!
 


동해안 따라 타우랑가로


옥토퍼스 비치 가는 길. 이름도 신기하네

동해안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여러 바다들에 또 들렀는데, 코로만델에 머무르는 며칠간 날씨가 너무 좋았고 론리베이가 기억에 너무 남아서 이젠 모든 바다들에 심드렁해지는 배부른 상태가 되었다.. 동해안은 바다마다 피싱 룰 사인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개방해 놓은 채로 생선뿐만 아니라 해산물들도 정해진 룰만 지키면 맘껏 잡아도 된다. 전복을 그냥 따 먹을 수도 있다는데, 너무 신기하지만 그런 건 귀찮아해서.. 패스.



바다 뷰를 보러 올라가는 온갖 트래킹 코스들도 많고 잘 되어 있어서, 운전대를 놓고 걷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작은 마을들은 정말 키위들의 휴양지 느낌인 게, 누가 봐도 건물들이 새로 지은 별장 느낌이고 사람이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아.. 나도 하나 갖고 싶다 바다 뷰 별장.. 



날씨 운이 너무 좋았던 코로만델 여행을 마치고, 나는 한 시간 정도 거리인 타우랑가에서 2차 정착할 마음을 먹었다. 원래 동해안 쪽을 타고 계속 여행하다가 웰링턴 쪽에서 일을 할까 생각했는데,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 전에 남섬에 넘어가면 캠퍼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타우랑가 쪽에서 조금 지내보려고.. 겨울을 나고 남섬으로 내려가는 걸로 계획 변경. 완벽한 계획을 짜지 않았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지는 워홀 비자는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허락해서 참 좋다. 



키위팩하우스에서 두 번째 일 시작!


코로만델에서 내려오면서도 계속 고속도로 주변에 팩하우스 인크루팅 광고가 보이고, 묵는 캠프그라운드마다 노티스보드에 농장에서 키위피킹 할 사람, 팩하우스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들을 볼 수 있었다. 카티카티 쪽에서부터 팩하우스가 점점 많아지길래, 내일부터 공장들에 들러서 어플리케이션을 넣어야지~ 하던 참에 온라인으로 지원했던 팩하우스 하나에서 연락이 왔다. 테 푸케에 데이시프트 자리가 있다길래 오늘 바로 어플리케이션 작성해서 보내고 토요일부터 5주간 일하기로 했다. 근처 홀리데이파크를 찾아볼까 했는데, 담당자가 전화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한 곳 추천을 해 줬다. 캠프그라운드지만 프라이빗이라 홈스테이 같은 느낌이라고, 여기서 일하는 백팩커들을 저렴한 가격에 연결해주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 나는 운이 참 많이 따라주는 것 같다.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고, 힘든 일 없이 잘 풀리기도 하고. 푸케누이에 처음 갔을 때처럼 이번 팩하우스도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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