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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Apr 14. 2020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나자

캠핑카 타고 해밀턴, 뉴플리머스로!

계획은 바뀌라고 있는 거지!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계획했던 대로, 잠시 한국에 다녀왔다. 오래된 친구의 결혼식에 꼭 가고 싶었고, 마침 가족들의 생일도 비슷한 날짜에 있어 재정비 겸 일주일 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온 날, 캠퍼밴을 몰고 바로 코로만델 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돌아오는 바로 전날 노트북 충전기가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데... 아침 아홉 시에 부랴부랴 센터로 찾아가니 적어도 2-3일은 걸린다고 했다. 예? 저 세시 출국인데요. 돌아온 날 오클랜드에서 수리를 맡기려고 하니 마침 퍼블릭 홀리데이라 닫고 맡겨도 또 일주일 정도 소요될 예정..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했다.


이제 가을 냄새가 물씬 난다. (저녁엔 개 춥다는 뜻)

내게 주어진 일주일 동안 비슷한 거리에 있는 해밀턴 혹은 코로만델 어느 쪽을 먼저 여행할지 고민이 됐다. 오클랜드로 다시 돌아와야 했기에 멀리까지 갈 수는 없었으니. 일단 코로만델을 더 여유롭게 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서 해밀턴 쪽으로 내려갔다. 여행책자에 나온 ‘해밀턴은 한국의 대전 같은 도시다’라는 말을 도착하자마자 실감. 이제껏 계속 트래픽 없는 파 노스에만 있다가 오클랜드 잠시 있는 것도 힘들었는데 해밀턴도 나름 큰 도시라고 트래픽 쩔고.. 어차피 걸어 다니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는 교육도시 같은 느낌이라, 뭔가 할 것도 없고.. 해밀턴 가든만 잠시 둘러봤는데 투어리스트 천국.. 도망 나옴.. 그래서 계획을 또 수정했다. 뉴플리머스까지 내려가기로.



그래피티의 도시 (ㅋㅋ)

지도를 찾아보다가 뉴플리머스에 타라나키 산이 있는 걸 봤다. 전에 친구가 뉴질랜드에서의 경험 중 넘버원으로 타라나키 정상에 등반했던 걸 꼽았던 기억이 나서, 나도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짧은 트랙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하루 정도 뉴플리머스 시내와 바닷가를 둘러봤다. 뉴플리머스는 정말 조용한 도시다. 물론 오클랜드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는 정말 평화롭고 건물들이 아기자기하다. 


미술관과 전시들을 조금 둘러보고 근처 바다로 이동. 도시가 바닷가에 위치해서 아침에 바닷가 산책길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도 현지인인 양(하지만 검은 머리의 아시안을 쳐다보는 수많은 눈빛들ㅋㅋㅋㅋㅋ 오클랜드 이외의 도시로 나오면 백팩커들 말고는 키위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다 심지어 그 많은 중국인 인도인까지도..) 걸어보기도 함. 바닷가에 캠퍼밴을 뒤로 대 놓고 점심을 먹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전날 사전답사. 차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서 본 뷰!
Take nothing but photographs, leave nothing but footprints.
날씨 자체는 너무나 따뜻하고 좋았다! 오히려 땀을 줄줄 흘림..
운전할때만 보이는 타라나키 정상

타라나키 산은 트랙이 정말 많은데, 나는 그중에서도 왕복 3-4시간 정도 걸린다는 망고레이 트랙을 선택했다. 정상까지 등반하는 건 편도만 8시간인데, 제대로 된 트래킹 기어도 없고 체력도 받쳐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난이도 중간 정도의 트랙으로 가기로. 아침 9시 20분에 등반을 시작했는데, 10시 50분에 도착했다. 올라갈 땐 안개가 잔뜩이라 아 이러다 하늘도 못 보겠네 했는데 알고 보니 다 구름이었고.. 구름을 뚫고 올라가니, 더 높은 곳에 있는 구름들에 가려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타라나키 산 정상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참 기다렸는데 안 되겠어서 다른 뷰를 찾아가자 싶어 내려와 운전하는데 꼭 운전할 때만 구름이 걷혀... 놀리듯이.


소들이 점령한 고속도로.. 저는 달리고 싶어요..

그렇게 뉴플리머스 여행을 간단하게 마치고 또 3일에 걸쳐 오클랜드로 올라가는 여정. 원래 구글맵은 그냥 state highway number X를 타라고 말해주는데 이상하게도 중간에 New Zealand를 붙이더라. 알고 보니 43번 고속도로, forgotten world highway라고 뷰가 근사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거였다. 물론 대관령보다 더 까다로운 꼬불 길에 정비되지 않은 자갈길이 계속 이어지기도 하는 도로인데, 100km 이상 되는 긴 하이웨이라서 중간에 쉬어가는 여행을 하는 구간이었다. 나는 그냥 가는 길에 있는 홀리데이파크가 평이 괜찮길래 쉬었는데 그런 여행루트가 있는 줄은 나중에 검색해보고야 알았다. 물론 뷰가 좋은 만큼 산세가 험하고, 그 말인즉슨 커넥션이 (전화 신호, 인터넷 신호) 아예 없다는 뜻이라서, 운전하는 중간중간 늦은 알림들이 도착하기도 하고.

43번 고속도로 중간을 달리다가 작은 마을에 도착했는데, republic of -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 의아했다. 독립국가라고? 뉴질랜드 안에 독립국가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이탈리아 내 바티칸 같은 느낌인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Republic of Whangamomona라고, 약간 장난 식이긴 한 것 같은데 대통령도 패스포트도 따로 있는 독립국가였음. 이렇게 신기할 수가. 진작 알았으면 잠시 멈췄을 텐데, 신나는 드라이빙에 빠져 휙 지나가 버린 게 아깝긴 하다.



Te Kuiti와 Te Kauwhata에서 하루씩 묵으며 근처를 구경하고, 캠핑장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 이야기도 많이 했다. 테 쿠이티에서 만난 마오리 아저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가 근처 미트 공장에서 일하는데 캐주얼 워커도 받아준다며, 원한다면 리셉션에 잘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근처에 홀리데이파크도 없고 너무 작은 마을이라 패스. 테 카우파타에서는 독일인 워홀러를 만났는데, 4일 후에 차를 처분하고(팔 수가 없는 챀ㅋㅋㅋㅋㅋㅋㅋㅋ 타이밍 벨트도 갈아야 하고 왼쪽 범퍼 아예 나갔고.. 그냥 폐차한다고 했다) 돌아갈 건데 캠핑용품 필요하냐면서 이것저것 나눠줬다. 지난주에 다 샀는데... 너를 지난주에 만났어야 했는데... 아무튼 이것저것 득템.




무료 캠핑장에서 숙박비 절약!


캠핑장 바로 앞 바닷가, 그곳의 피크닉테이블, 저물어가는 노을의 뷰!


캠핑장 이야기를 하자니, 어디서 묵었는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푸케누이에서 내려온 이후 돈을 내는 홀팍에서는 딱 하루 묵었는데 (43번 고속도로 중간에, 프리사이트가 없어서ㅠㅠ) 나머지는 다 프리사이트. 나는 self-contained 차량(차 안에 샤워/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것, grey water 20L, 깨끗한 물 20L 수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이 아니기 때문에 화장실이 있는 프리사이트에서만 묵을 수 있는데, 뉴질랜드는 워낙 DOC가 잘 되어있기도 하고 공용 화장실이 있는 숲이나 district council 같은 곳은 캠퍼들에게 묵을 권리를 주기도 한다. 오클랜드 근처의 럭비 경기장 옆, Kawhia 바닷가 근처의 캠프 사이트, 뉴플리머스 바닷가가 바로 앞인 캠프사이트, 테 쿠이티의 폭포 근처 숲, 테 카우파타의 럭비경기장 옆 프리사이트에서 각각 묵었고 다들 시설이 너무 깨끗해서 놀랄 정도였다. 파 노스에서 내려오면서 묵었던 레테아랑 와이프 동굴 근처보다 훨씬. 나는 캠퍼밴으로 여행하니 이렇게 숙박비를 아낀다!




캠퍼밴도 겨울 정비


일주일 간 쓸쓸했을 리버티에게 재정비 시간도 줬다. 언덕에서 힘을 잘 못 받길래, 오클랜드에 있는 김에 지난번에 갔던 한인 정비소에 들러서 검사를 받았다. 물론 오래된 차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셨지만, 몰아보시더니 크게 힘을 못 받지는 않는 것 같다고 안에 있는 부품들을 조금 청소하고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해 주셨다. 뒤에 떨어진 머플러도 고정시켜 주시고. 그 이후부터는 잘 달리는 리버티!



한국에서 사 온 꼬마전구들을 달아줬고 선물 받은 드림캐쳐와 예쁜 썬 캐쳐도 달아줬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길래, 커튼도 만들어서 달고, 한국에서 겨울에 창문에 뭘 붙이듯 매트를 잘라 창문 쪽으로 한기가 들어오는 걸 막아놨다. 캠핑용품도 이것저것 샀고, 한국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도 가져와서 이제 aux라인 없는 슬픔 끝! 



여유로운 캠퍼의 일과



일곱 시쯤 눈을 뜬다. 주변이 탁 트인 캠핑장이 대부분이라서, 바닷가에서, 숲에서 해돋이를 보며 일어난다. 어차피 딱히 정해진 할 일이 없으니 조금 뒹굴거리다가, 일어나서 가스버너에 물을 올려 차를 끓이는 동안 침구정리를 한 후 꿀을 넣은 블랙티를 마시며 몸을 푼다. 이 과정에서 필라테스도 들어가면 좋겠지만 아침에 너무 춥고 바닥이 축축해(핑계).. 낮에 해가 높이 뜨고 건조해지면 매트를 꺼내서 하긴 한다.



뭔가 따뜻한 걸 먹고 싶거나 캠핑장에 키친이 잘 되어 있는 날엔 양파 감자를 썰고 소스를 휘리릭 볶아내 파스타를 아침으로 만들고, 조금 귀찮거나 이동이 필요한 날에는 간단하게 과일과 요거트에 시리얼이나, 토마토와 치즈를 넣은 멀티 그레인 샌드위치를 먹는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만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이동한다. 근처에 할만한 것, 볼만한 것들이 있을 경우엔 들르기도 하고, 오후에는 샤워시설을 찾아 뜨거운 물로 씻어낸다. 대부분의 시간을 차에서 보내는데, 운전하거나, 뒷문을 열어두고 베드에서 책을 읽거나, 바닷가에 대놓고 멍하니 사색하거나. 오후쯤 되면 다음 프리캠프그라운드를 찾고, 해가 지기 전에 캠프에 도착해 시설을 둘러보고 밴 정비, 책 읽기, 음악 듣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하기도 하고, 저녁을 간단하게 해먹은 후 밴으로 들어온다. 침대를 다시 만들고 따신 블랑켓 안에서 듀오링고와 한국에서 사 온 책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한 후 이후부터는 칩스, 쿠키를 먹으면서 쉬면서 책도 읽고, 이제 영화도 볼 수 있겠지. 재즈음악을 들으며 노곤 노곤하게 침낭 안에 들어가 있다가 열한 시쯤 잠드는 것 같다. 그럼 여덟 시간 정도 자는 거라 아주 충분하다. 
 
 꿈꿔왔던 캠퍼밴 여행이라 아주 여유롭고 좋은데, 마냥 노는 것도 참 불안하긴 한 게 천생 한국인이다. 코로만델까지 여유롭게 여행한 이후에 타우랑가 쪽에서 일을 좀 구할까 생각 중이다. 겨울 캠퍼밴 생활이 좀 추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너무 빨리 남섬에 넘어가는 건 무리인 것 같고, 그나마 따뜻한 북섬에 머물면서 가능하다면 파워뱅크를 사거나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아마존이나 미국 사이트에 좋은 파워뱅크들이 저렴한 가격에 많은데 뉴질랜드 배송이 안돼ㅠㅠ 업체에서 대여한 캠퍼밴이나 큰 카라반에는 히터가 있는데 이 캠퍼밴은 내가 만든 거라,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정보를 검색 중이다. 다음은 코로만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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