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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15. 2020

기대가 작으면 기쁨이 큰 법

티마루, 오아마루를 거쳐 더니든, 인버카길 여행!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 더니든 인버카길까지 찍고 퀸스타운으로 올라갈 요량으로, 1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계속 달렸다. 픽턴과 블레넘에서 '남섬 별로 안 춥네!'라고 했던 나에게 복수라도 하듯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추워진다. 바람의 도시 웰링턴에서 3개월을 버텼는데 뭐 얼마나 춥겠어! 했더니 또 다른 개념의 추위를 만났다. 바람도 많이 불고 온도도 많이 떨어진 게 확연히 느껴진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 티마루


티마루라는 소도시에 들렀다. 사실 남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곳은 아니라서, 여행책자에도 잘 나와있지 않고 그저 거쳐가는 여행지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여기는 바닷가를 따라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언덕 위쪽으로 하이스트릿이 나 있는데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타운 자체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더 날씨가 풀리면 장미가 만발할 저 공원의 모습을 놓치는 것이 약간 아쉬운.. 요즘은 어딜 가나 퍼블릭 가든이나 보태니컬 가든에 들르는데 그중에 꼭 있는 '로즈가든'이 여전히 초록빛이라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봄이 되면 다시 들를 수 있을지.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날씨도 중요하다. 



지난번에 바닷가에서 본 바다사자가 홀로 누워 바람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픈 애가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이 표지판을 보니 평소 모습이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펭귄을 볼 수 있을까 잠시 기대했지만 이 바다 동물들은 주로 저녁때 나타난다고 한다. 나는 너무 아침에 도착해서 펭귄은 패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듯 가는 곳마다 꽃이 만발. 왜 사람들이 꽃 구경 가는지 이제 알았다.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앞에서 표지판을 읽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이 앵무새 앞에 오시더니 Hello Jimmy! 를 연신 외치신다. 뭐 하나 했더니 말 따라 하는 앵무새라고.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입을 벌리지 않았지.. 



여기는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스코틀랜드 분위기가 난다. 건축양식도 그렇고 우울한 날씨도 그렇고. 지구본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영국을 대입시키는 것 같은 느낌.




스팀펑크의 도시, 오아마루



한참을 또 달려 오아마루에 도착! 이름도 비슷한 게 티마루의 조금 더 큰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티마루에서 본 것 같은 비슷한 교회가 마을 중심을 지키고 있고 하이스트릿 따라서 이런저런 샵들이 늘어져 있다. 오아마루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어서 잠시 인포센터를 들렀다가,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는데..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노년 관광객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그 말인즉슨 젊은 여행자는 거의 나뿐이라는 이야기... 가끔 중국인 일본인 커플 관광객들이 보이는데, 이 근처 정보가 별로 없는 한국 웹사이트들에 비하면 이들은 꽤 많은 여행정보를 가지고 있나 보다 싶었다. 



티마루에서 스코틀랜드 냄새를 맡은 게 영 틀리진 않았던 모양이다. 오아마루로 내려오니 건물 위에는 영국 국기도 모자라 아예 스코틀랜드 국기가 걸려있기도 하다. 여기저기 글래스고, 스코티시 등 여기가 뉴질랜드임을 기억에서 지우도록 하는 길이름도 꽤 많은 편이다.


우중충한 날씨와 줄지어 늘어선 마켓


스팀펑크라고, SF+역사 같은 장르물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관련한 어트랙션도 있고 카니발+파티 등으로 온통 스팀펑크 물결인 오아마루. 나중에 찾아보니까 재밌게 봤었던 영화 <휴고>도 같은 장르물이라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여러 개를 찾아볼 수 있다. 스팀펑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지순례하듯 오는 것 같았다. 박물관이 북적북적.



오아마루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룩아웃에 올라가서 폐에 신선한 공기 채워 넣기.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그게 오히려 잘 어울리는 건물들과,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오아마루 그리고 티마루를 뒤로 하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볼만한 게 있을까 싶어 정보를 이리저리 찾다가 캠퍼메이트를 켰다. Vanished world trail. 그중 하나인 모에라키 바위들을 보러 왔다. 관광지만 주로 나와있는 여행책자는 이럴 땐 소용이 없다. 이 거대한 돌이 만들어지는 건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데, 모두 신기해하며 저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약간 거북이 등딱지 같은 느낌. 




반반, 더니든



한참을 또 달려 더니든 중심지로 들어가기 전에 노스 더니든 쪽에서 신기한 어트랙션을 발견했다. 볼드윈 스트릿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도로라고. 뭐 얼마나 높겠어? 하고 이 사진을 찍은 후 돌아봤는데



내가 소리를 내놓고도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 버렸다. 사진으로는 좀 덜 가파르게 나온 것 같은데, 생각보다 엄청 가파르고 등산하는 느낌 팍팍 들게 생겼다. 겨우겨우 기어올라가듯이 올라갔는데, 중간에 돌아보다가 진짜 오금이 저리다는 느낌을 경험했다. 끝까지 올라가면 식수대도 준비되어 있다. 정말 힘든 게 맞다니까.


위에서 내려다보고, 옆에서 보면 이런 각도다. 안 지리겠냐고요!


중간에 실제로 차가 올라오는 광경을 봤는데, 저 멀리서부터 엑셀 미친 듯이 밟아서 속력을 쫙 내고 올라오지만 어차피 가팔라서 속도가 줄어드는 걸 보고, 차가 힘을 못 받아서 밀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찔한 생각을 했다. 투어버스가 시시각각 도착하는 걸 보고 있자니 여기 사는 이 사람들은 북촌 한옥마을 사는 느낌이려나, 라는 생각을 했다.



볼드윈 스트릿을 뒤로하고 또 공원에 들렀다. 우중충하고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그래도 걷기는 포기할 수 없다. 나름 봄이라고 꽃도 많이 피었는데, 날씨가 너무 안 도와줘! 



그리고 타운센터로 넘어왔다. 역시 이번에도 주차공간이 여유롭지 않아 근처 주거지역에 차를 대 놓고 마치 로컬처럼 걸어 나오기. 런던 센폴이랑 이름이 같은 교회로부터 나름의 투어를 시작해봤는데, 더니든 타운센터는 길 찾기가 수월하다. 옥타곤으로 이름 지어진, 진짜 8 각형의 중심지와 거기서 뻗어나가는 일직선의 가지들. 확실히 건축구조물들이 남섬, 그리고 남섬에서도 점점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더 웅장한 느낌이 있다.



한 바퀴 타운을 돌자 할 게 없어졌다. 더니든 분위기는 ‘반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타고 대학교를 다니는 젊은이들이 한쪽 거리를 다니면 여행객들을 비롯한 로컬들은 대부분 다 나이가 많은 편이라서 중년층이 거의 안 보인다. 젊은이 아니면 노인인 곳.



유명한 대학교가 있는 곳이라 그런가, 왠지 진중해야 할 것만 같은 도시 분위기였다. 차분해서 좋다가도 곧 심심하고, 타운센터의 바글바글함을 보고 있으면 해변가로 가고 싶어지는 곳. 차창을 심하게 때리며 모래를 던지는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인버카길로 출발. 




인버카길 사람들은 다 펍에



사실 원래는 아무 생각 없이 1번 도로를 따라 인버카길까지 내려가는 거였는데, 중간에 저 삼각형 모양의 표지판을 발견해서 잠깐 인포센터에 들렀다. 저게 뭐야? 했더니 1번 도로를 따라가면 뭐 볼 게 없으니까, 해안도로 쪽으로 해서 이것저것 볼만한 곳들을 따라갈 수 있는 코스였다. 와!



근데 운이 따르지 않아 미친 듯이 비가 오는 날씨를 뚫고 운전을 해야 했다. 확실히 메인 고속도로가 아니니까 구불구불해서 운전이 까다롭긴 하지만, 덕분에 차도 별로 없고 주변이 광활해서 구경할 게 많다. 날씨만 좋았다면 이 근처 바다도 정말 손에 꼽는 아름다움을 발했을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뭐 등대란 등대는 다 가 볼 것처럼 또 차를 멈추고 등대까지 걸어보기도 했는데,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서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스팟을 지나 인버카길에 도착!



나는 비에 굴하지 않고 공원을 걷는 사람. 비가 내리면 풀 냄새가 더 진하게 나면서 걷기가 좋다.


다음날 아침 잠시 들른 블러프 힐. 남쪽 끝이나 다름 없는데 사실 볼 건 별로 없다.
아니 누가 보면.. 아포칼립스인줄 안다고요. 진짜 도시에 사람이 이렇게 없어도 되냐.


인버카길 시내를 걸었는데 사람이 1도 없다. 진짜 너무하네. 여행객들조차 없는 동네야! 누가 여기를 도시라고 할까, 했더니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 다 일요일 마켓에 와 있었다. 한국 음식도 팔고 있던데 불고기를 빵에 끼워서 팔길래.. 빵은 먹기 싫어서 바이 바이. 마켓은 소소하게 예쁘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펍에는 사람이 많다! 음식이 오래 걸리길래 내 안의 한국인을 다독였지만.. 늦는 덴 이유가 있지. 다 먹느라 죽는 줄 알았다. 


사실 더니든과 인버카길은 뉴질랜드 오기 전에 여행책자에서 보고 꼭 가봐야지 했던 도시였다. 영국에서 여행할 때 에든버러를 비롯해 스코틀랜드 분위기가 너무 기억에 남아서, 그곳의 분위기를 꼭 빼닮았다는 이 도시들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티마루와 오아마루가 너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기에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고, 더니든과 인버카길은 티마루와 오아마루에서 차곡차곡 쌓아둔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해줄 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고. 


뭐든 그렇다. 기대하고 보면 그만큼 충족되지 않아 마음에 차지 않고,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있다 보면 소중한 무언가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실망할까 봐 기대하지 않는 버릇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2018년 블로그에 올린 글을 다시 손보면서 브런치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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