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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18. 2020

합의 중요성

네 번째 일자리, 키친핸드로 일했던 퀸스타운에서의 2주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를 지나 퀸스타운 입성


서울 처음으로 발견


인버카길에서 퀸스타운을 향해 달리다가 하루 저녁 일찍 프리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Lumsden이라는 작은 동네였는데, 타운센터 한가운데 있는 놀이터 주변 공터를 캠퍼들에게 오픈해주고 있었다. 공터라기보다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기차역에 인포센터와 자잘한 필요시설을 마련해준 것이다. 꽤 넓은 부지에 피크닉 테이블도 있고,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설거지 시설과 전기 이용도 가능한 것 같았다. 바로 앞에는 시티 카운실 겸 도서관이라서 와이파이도 쓸 수 있다! 대단한 프리사이트.


노을을 바라보며 요가매트를 펴고 한참 운동을 하다가 누군가 지나가길래 으레 하이, 하고 웃어 보였다. 근데 어딘가 낯익은 얼굴. 둘 다 어? 어?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웰링턴 캠핑장에서 항상 만났던 프렌치였다. 내가 출근하기 전 키친에서 밥을 먹는 시간과, 커피를 끓이는 그 캠퍼의 시간이 맞아서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우연찮게도 웰링턴을 떠나온 날짜도 비슷했는데, 나는 동쪽으로 돌아 내려왔고 얘는 서쪽으로 돌아 내려와 여기서 만난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참 어디나 인연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 곱씹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뉴질랜드는 남섬이 아름답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나는 북섬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그런지, 2주 여행 동안 ‘그렇게까지 남섬이 아름다운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음날 도달한 와카티푸 호수는 그 생각을 박살 내주었다. 어쩜 이렇게 물이 맑고 깨끗한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킹스턴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러 워킹트랙도 걷고 조용하게 호숫가에 앉아 놀다 보니 왕가레이 쪽에서 헬프엑스 할 때 호스트 아저씨가 카이이위호수에 데려가 줘서 수영을 했던 기억이 났다. 점점 날씨가 풀리면 호수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레어했다. 바닷물처럼 짜지 않고 파도가 높지 않아 수영을 잘 못하는 나에게는 호수가 훨씬 좋은 조건이다. 



픽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돌며 남섬 여행을 시작한 건 정말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여기는 차가 왼쪽으로 달리니까 좀 더 해안가에 가까이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의도였는데 정말 곳곳의 해안도로를 그렇게 달리게 됐고, 인버카길 찍고 퀸스타운 올라올 때는 또 왼쪽에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달려 세상 아름다운 뷰가 눈에 담긴다. 뉴질랜드를 떠나기 전에, 혹은 나중에라도 다시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꼭 빼먹지 않고 돌아올 곳이다. 절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중간중간 잘 마련되어 있어서 다섯 번 넘게 쉰 것 같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호수와 산의 연속이지만 멈출 때마다 다르다. 





비싸서 정착하기 힘들지만..
퍼그버거로 마음을 달래 보자


퀸스타운에 도착하자마자 일터로 달려가 계약서를 작성하며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일자리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숙식을 해결해야 할 차례. 퀸스타운은 남섬 최대의 휴양도시로 여름마다 관광객이 북적여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캠퍼밴으로 묵을 수 있는 홀리데이파크도 몇 군데 없어서 가격이 비싼데, 그중 저렴한 곳을 찾아갔는데도 무려 하루에 30불을 내야 했다. (웰링턴에서는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하루에 20불 내면서 비싸다고 했는데, 여기는 기본 2인 가격을 지불해야 해서 전기 사용 없이 30불이었다) 주인이 상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시설, 캠프그라운드에서 느껴지는 뭔가 쎄한 느낌 때문에 나는 바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조금 더 알아보다가, 타운에서 조금 더 운전해서 나가야 하는 DOC에 묵기로 했다. 연박 할인 혜택이 있어서 저렴한 데다가, 호수 바로 옆이라서 눈 뜨면 덤불 사이로 물가가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캠핑장이다. 물론 불편한 점은 있다. 타운에서 멀어지고 산골짜기 호숫가로 내려오니 인터넷과 휴대폰 신호가 아예 안 잡히고, 기본 화장실과 수돗가 정도만 준비되어 있어 샤워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SNAP 피트니스에 등록했다! 퇴근하고 가면 사람 없이 한산해서 운동도 꾸준히 할 수 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샤워도 하고. 여행할 때는 주로 이렇게 살았지만 일하면서도 이렇게 살 줄이야. 사실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하고 살 순 없으니까, 아무 생각 없다. (ㅋㅋ) 더 편한 점도 많고 돈도 절약하고 아주 만족스러운 편. 하지만 미친 가격의 페트롤 어택..



첫날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으러 퍼그버거에 갔다. 소문대로 줄이 밖에까지 늘어져 있었고 테이블은 앉을 곳이 없었다.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오전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장사한다는데, 아침일찍은 일찍대로 바쁘고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항상 바쁘다. 기본 퍼그버거에 체다치즈를 추가해서 먹었는데, 사실 뭐 얼마나 맛있겠어, 했다가 뒤통수 조금 (!) 맞았다. 일단 소고기 패티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씹는 맛에 우와 했는데, 먹다 보니 버거 번 자체가 쫄깃쫄깃해서 식감이 더 좋았다. 야채도 신선하고.. 크기에 비해 가격대도 엄청 비싼 편은 아니고. 영국남자 유튜브에 나왔던 ‘빅 알’ 도 먹어 봤는데 진짜 사이즈도 얼굴만 하고 든 게 너무 많아서 질질 흘려가며 먹었다. 세상에 유튜브 클립 15분짜리 네 개를 봤는데 버거가 안 끝나는 기적.. 화수분인가?




합의 중요성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두고 떠나다니


세상의 모든 관계는 합이 중요하다. 결론 먼저 말해보자면 퀸스타운이라는 도시와 나는 합이 안 맞았고, 그래서 떠났다.


주말에 방문할 수 있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마을도 있었는데. Glenorchy


일터는.. 기본은 지키는 곳이었다. 웰링턴에서는 그렇게 미루고 미뤘던 계약서도 바로 작성했고, 쉬는 시간도 딱 정해져 있는 데다 메뉴에서 골라 밥을 먹는다. 웰링턴에서는 키친핸드니까 설거지’만’ 하다가 할 일이 정 없으면 프렙을 도와줬는데, 여기서는 똑같은 키친핸드라도 설거지’만’ 할 수가 없다. 설거지+밥+튀김의 조합인데, 초밥 레스토랑이다 보니 밥을 20kg씩 해야 했다. 그 옛날 급식소에서나 보던 무쇠솥에다가 한 번에 한 5-6kg씩 하루에 세네 번을 해야 해서 어깨가 빠질 뻔. 그나마 하루 이틀 후 팔 근육이 생기면서 괜찮아졌다. 튀김이 나가는 주문이 들어오면 번번이 치킨이나 채소를 튀겨야 하고, 초밥 쪽에서 필요하다는 튀김은 또 따로 해서 내보내야 한다. 캐비닛 디스플레이되어있는 튀김이 다 나가면 또 튀겨야 하고... 그 와중에 밀려 들어오는 설거지거리도 해서 내보내야 하는데 디시 워셔 사이즈가 아주 작은 데다 랙이 하나라서 속도가 영 안 붙는다. 뭐라도 하나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평일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주말이나 바쁜 날에는 혼자 할 일이 아닌데, 키친 사이즈가 좁고 배치가 어색해서 두 명을 쓰기에도 애매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그만둔 이유는 일이 어려워서 혹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웰링턴에서 일을 그만둘 때 학교 방학이 시작됐고 딱 2주 여행한 후 퀸스타운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니 방학이 끝나서 바쁜 시기는 지난 때였다. 게다가 나는 평일에만 일해서 주말만큼의 손님들이 몰려오지도 않았고. 매장이 바뀌었으니 여기서의 일을 몸에 익히는 데 적응만 하면 무난히 지나갔을 테다. 하지만 엄청난 정신적 위기가 찾아왔다. 마지막 몇 달 편하게 지내보자고 선택한 일자리가 나에게 이렇게 큰 타격을 줄지 생각이나 했을까. 일보다는 사람이 힘들어서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 작성할 때 매니저님한테 대충 들어서 알고 있기는 했다. 메인 셰프님이 나이가 있는 경상도 남자분이라 무뚝뚝하고 어려울 수 있다고. '그래 뭐 얼마나 그렇겠어' 하고 키친에 들어갔는데, 왜 아직 일 시작도 안 한 사람한테 먼저 주의를 줬는지 바로 깨달았다.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중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배우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나는 일을 금방 배우기도 하지만, 스스로 해 나가면서 요령을 터득하고 익숙해지는 사람이라서 처음 몇 번의 시행착오는(전체 조직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그럴 수 있다고,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고 배우며 성장한다. 그런데 첫날부터 모든 걸 통제당했다. 애니어그램 테스트에서 나는 독립성이 강해서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고 나 자신이 상처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백번 맞는 말이다. 나는 뭘 하려던 참에 누가 시키면 딱 하기가 싫어지는데, 그만큼 내 자율성과 의지가 중요하다. 웰링턴에서 일할 때, 주말에 몰리는 손님들 때문에 상황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싫었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알아가는 중이었는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말한 건 지금 당장. 뭐 하나 보일 때마다 지시. 그렇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집기도 툭툭 집어던지고 성난 소리를 낸다. 지켜보니 친밀감과 관계없이 매장의 모든 사람들한테 그렇게 대한다. 이건 경상도 사람이라서 무뚝뚝한 게 아니라, 무례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곤조만 부리는 성격인 것이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중


성인이 된 후 대학시절과 사회생활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한 가지 배운 점은, 일단 어떤 사람이든 잘해주고(원하는 대로 해 주고) 보라는 것이다. 돌아오는 행동으로 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받는 게 익숙해져서 감사한 줄 모르는 사람인지, 나한테 감사함을 되돌려주는 사람인지. 원하는 대로 해주면서 가끔씩 내가 원하는 것도 요구하면 상하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임을 인식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요것 봐라? 만만치 않은 상대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랄병을 멈추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해 봤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해줘 봤다. 근데 도무지 먹히질 않는다. 돌아오는 건 똑같다. 2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십 분이 멀다 하고 앞치마 벗어던지고 욕 한 바가지 하고 그냥 나갈까,라고 생각했다. 7주만 일하기로 하고 들어온 곳이지만 나머지 4-5주를 이렇게 불행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퇴근한 이후에도 기분이 영 좋지 않고, 주말에도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이 정도로 병신인가? 싶어서. 자존감 도둑이 별 게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감정이 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회생활 시작하고 첫 프로젝트에 들어갔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다. 안하무인 선배 밑에서 배우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 눈칫밥 먹고, 내가 이렇게 병신인가 싶어 좀 더 잘해보자 하며 이 악물어 버티기만 했던. 한국의 그런 상하관계와 시스템 자체가 너무 싫어서 뛰쳐나와 뉴질랜드로 왔는데 그걸 똑같이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많은 지랄 같은 순간을 만났지만, 이 정도도 못 버티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단기간에 그만둔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들에게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얼마 남지도 않은 뉴질랜드 생활에서 행복하지도 않고 배우는 것도 보람도 없는 일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겠다는 고민 끝에, 매니저님과 상의 후 2주 만에 그만두기로 했다. 노티스 없이 그만두는 것 때문에 페이 못 주시겠다고 하면 그것도 괜찮다고 하니, 그 정도로 심하냐며 오히려 위로를 해 주시던 감사한 분. 사실은 매장 내에서도 이 이슈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냥 사고가 나서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는 걸로 전달해달라고 했는데, 이번 기회로 한 번 이야기를 꺼낸다고 하니 나름의 도움이 된 것일까.




‘아무것도 안 하기’조차 쉽지 않은 삶


스트레스 없이 바라보는 와카티푸 호수와 퀸스타운은 아름답더라. 역시 마음가짐이 중요해.


그렇게 그만두고 나니 아주 홀가분해졌다. 새 일자리를 구한 상태도 아니었고 귀국 후 엄마와 함께 할 호주 여행 결제로 이래저래 돈이 많이 빠져나가 텅장이 되고 있는 상태였지만, 비록 굶을지언정 마음만은 후련했다. 어느 정도 일을 하지 않아도 아직은 여유가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그냥 일주일을 쉬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고 중요한 일이다. 뉴질랜드에 워킹 ‘홀리데이’를 오면서 목표했던 그 첫 번째가 쉬면서 몸과 마음의 독소를 빼는 것이었는데, 사실 잘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자마자 헬프엑스들, 중고차 구입 및 캠퍼밴 개조, 여행 및 일 등으로 너무나 바쁘게 살았다. 일이 없는 주말에도 왠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근처 어딘가라도 운전해서 가곤 했고, 계속 나를 어떤 상황이든 밀어 넣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주 늦게 일어나서 호숫가를 걷고, 아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누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또 일어나 뭔갈 해 먹고, 졸리면 낮잠을 자고, 심심하면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고 또 책을 읽었다. 저녁엔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다가 잠들었다. 사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기라고 목표를 정하지 않았더라면 또 밀포드사운드나, 테카포 호수 쪽으로 근교 여행을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이 영 그러고 싶지 않아 했고, 휴식만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쉬었다. 모두가 떠나 휑한 캠핑장에 혼자 남아 아주 조용하게 잘 쉬었다.


필라테스 열심히 하는데 닭다리 같이 생겼네


피트니스 러닝머신 위를 뛰며 눈 앞의 설산을 보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퀸스타운의 기억이 아름다운 여행지로만 남았을 텐데. 눈 뜨면 와카티푸 호수가 보이는 숙소에서 묵으며 낮에는 쨍한 하늘 아래 수많은 레저스포츠를 즐기고 저녁에는 예쁜 타운을 거닐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할로윈 분장으로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고.. 나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기서 정착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게 흐릿해진 게 아닌가. 나에게는 정착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는 것들이 너무나 힘들다. 곧 지루함으로 바뀐다는 생각 때문에.. 한가롭게 도보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내가 여행자였다면 이국적인 풍경을 함께 즐겼겠지만, 생존을 위해 정착하는 10개월 차 워홀러는 그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을 지나는 시민들과 똑같이 느껴진다. 여기저기 땅이 꺼져 있어서 공사 중인 도로도 싫고, 시속 30으로 운전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트래픽이 생기는 것도 싫다. 한 번 마음에 거슬리면 이래저래 싫은 것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도 문제다. 블레넘에서 생각했던 여행하며 살기, 살면서 여행하기가 이번에는 이렇게 힘들다. 합이 안 맞았던 퀸스타운.


밤거리도 마음 비우고 보면 아름다운데, 항상 불평만 했었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라> 중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70일 정도를 앞뒀다. 남은 시간은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의 설렘을 가지고 새롭게 살아보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feat 양화대교.



*2018년 블로그 포스팅을 재구성해 브런치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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