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웰 빈야드를 향해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2주의 키친핸드 잡을 마친 후 나는 또 일자리 사냥꾼으로 변신해야 했다. 서서히 날씨가 좋아지길래 다시 아웃도어 잡을 찾아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며 농장 일을 몇 군데 지원했는데, 그중 퀸스타운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크롬웰 빈야드에서 연락이 왔다. 블레넘 여행을 할 때 끝없이 펼쳐진 빈야드를 보며 아 저기서 일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다, 했는데 그걸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욕 처먹으며 키친에 처박혀 우울하게 지내느니 이 한 몸 포도밭에서 열심히 굴려보겠습니다! 영차영차!
마지막으로 퀸스타운을 떠나기 전에 이불빨래나 차 레지스터 연장 등 시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끝냈다 (그 와중에 망할 놈의 퀸스타운 빨래방에서 고장 난 기계에 4불 날림.. 운전하던 중간에 와이퍼 떨어지고.. 끝까지 되는 게 없다ㅋㅋㅋ). 며칠 동안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마침 해가 나서 기분도 좋아졌고, 11월로 딱 넘어간 첫날이라서 뭐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10월은 첫날 픽턴 도착한 아침부터 DOC 관리자한테 털렸던 걸 생각하며 뭘 해도 안 될 한 달이었나 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말 그대로 단풍의 마을, Arrow Town
북쪽으로 올라가며 Arrow Town에 들렀다. 애로우타운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인데, 하필 봄에 와부렀네. 근데 왜 단풍구경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는 남이섬이 유명하듯, 여기는 마을 초입부터 도로 양쪽으로 커다란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초록잎도 아름다운데 울긋불긋 물들면 오죽 아름다울까.
인심도 좋지. All day free parking이다. 몇 시간 정도면 후딱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라서 All day는 사실 의미가 없긴 하지만, 어딜 가도 차 댈 곳이 없는 큰 도시들을 거쳐오다 보니 무료주차장에 눈이 돌아가…
단풍과 잘 어울리는 오두막집들이 많다. B&B나 카페들도 오래된 건축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체험형 마을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운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있고, 한 블록 건너서는 냇가와 산을 마주하고 카페나 음식점들이 있어서 관광객의 마을이구나 싶었다. 온통 사진 찍는 사람들 천지인데.. 로컬은 안 보인다(ㅋㅋ)
날씨가 좋아 냇가를 따라 한참 숲을 걷다가 돌아와서 좋은 경치를 반찬삼아 점심을 먹은 후,
또 아이스크림을 그만... 뉴질랜드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다 엉엉… 카운트다운에서 세일하면 자주 사 먹는 그 Deep South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맨날 배스킨라빈스에서 똑같은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여기 오니까 아이스크림 천국임. 나중에 이탈리아 가면 젤라또에 삼시세끼 눈 돌아가려나 싶다.
천천히 이동하자는 생각에서 근방의 저렴한 캠프 사이트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근심 걱정이 없어지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햇빛 내리쬐는 잔디밭에 요가매트를 펴 놓고 운동 후 샤워하고 나오니 세상 천국. 해가 길어지면서 거진 아홉 시까지 밖이 훤하니, 한참 책 읽고 글 쓰고 요리한다고 뚝딱거려도 밝아서 좋다.
호수가 아름다운 와나카
다음날은 커다란 호수가 중심에 자리한 와나카에 들렀다. 뉴질랜드 곳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퀸스타운보다 와나카가 아름답다길래 기대를 많이 했다. 기대하면 대부분 실망이 돌아온다는 걸 알지만, 여기는 진짜 아름다웠다! 날씨가 흐려도 아름다워! 사람 없는 호숫가를 걷고, 한참 앉아 햇빛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겨울에는 어딜 가도 혼자였던 것과 반대로 날씨가 따뜻해지니 여행자가 점점 많아지는데, 호숫가가 워낙 넓어서 다 여기저기 드러누워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끔 웃음 지어 보이는 친절한 사람들. 너무 격 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들과, 격한 무표정을 유지하는 차가운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이 거리감이 좋다.
날씨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차로 대피하긴 했지만, 크롬웰과 가까우니까 날씨가 좋아지면 자주 올 것 같다. 퀸스타운에서 있으려고 할 땐 12월에 와카티푸 호수에서 주말마다 수영하려고 했는데 이제 틀렸으니까 대안은 와나카 호수다!
새로운 일터가 될 크롬웰 도착!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크롬웰! 마을 초입에서부터 좋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진짜 작은 동네다. 구경할 것도 별로 없고 타운센터 가운데에 떡하니 과일 모형들만 서 있다. 12월-1월이 되면 체리 시즌이 시작돼 백패커들이 모여들고, 나머지 시즌에는 과일 농장이나 빈야드 일자리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퀸스타운도 와나카도 가까운 곳이라서 살며 여행하기는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
올드 크롬웰 타운이라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체험마을 같은 공간이 있는데, 관광객들은 그리로 다들 간다. 던스턴 호수를 끼고 있는데 와카티푸나 와나카처럼 고요하고 맑은 호수는 아니라서 그냥저냥 눈요기할 정도. (경치에 대한 눈 높아져서 큰일이네)
여기서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남은 두 달 정도를 보내게 된다. 농장으로 시작해 빈야드로 끝나는 뉴질랜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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