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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23. 2020

어디든 이 한 몸 일할 곳이 없으랴

크롬웰 빈야드를 향해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2주의 키친핸드 잡을 마친 후 나는 또 일자리 사냥꾼으로 변신해야 했다. 서서히 날씨가 좋아지길래 다시 아웃도어 잡을 찾아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며 농장 일을 몇 군데 지원했는데, 그중 퀸스타운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크롬웰 빈야드에서 연락이 왔다. 블레넘 여행을 할 때 끝없이 펼쳐진 빈야드를 보며 아 저기서 일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다, 했는데 그걸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욕 처먹으며 키친에 처박혀 우울하게 지내느니 이 한 몸 포도밭에서 열심히 굴려보겠습니다! 영차영차!


마지막으로 퀸스타운을 떠나기 전에 이불빨래나 차 레지스터 연장 등 시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끝냈다 (그 와중에 망할 놈의 퀸스타운 빨래방에서 고장 난 기계에 4불 날림.. 운전하던 중간에 와이퍼 떨어지고.. 끝까지 되는 게 없다ㅋㅋㅋ). 며칠 동안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마침 해가 나서 기분도 좋아졌고, 11월로 딱 넘어간 첫날이라서 뭐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10월은 첫날 픽턴 도착한 아침부터 DOC 관리자한테 털렸던 걸 생각하며 뭘 해도 안 될 한 달이었나 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말 그대로 단풍의 마을, Arrow Town



북쪽으로 올라가며 Arrow Town에 들렀다. 애로우타운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인데, 하필 봄에 와부렀네. 근데 왜 단풍구경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는 남이섬이 유명하듯, 여기는 마을 초입부터 도로 양쪽으로 커다란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초록잎도 아름다운데 울긋불긋 물들면 오죽 아름다울까.



인심도 좋지. All day free parking이다. 몇 시간 정도면 후딱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라서 All day는 사실 의미가 없긴 하지만, 어딜 가도 차 댈 곳이 없는 큰 도시들을 거쳐오다 보니 무료주차장에 눈이 돌아가…



단풍과 잘 어울리는 오두막집들이 많다. B&B나 카페들도 오래된 건축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체험형 마을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운 중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있고, 한 블록 건너서는 냇가와 산을 마주하고 카페나 음식점들이 있어서 관광객의 마을이구나 싶었다. 온통 사진 찍는 사람들 천지인데.. 로컬은 안 보인다(ㅋㅋ)



날씨가 좋아 냇가를 따라 한참 숲을 걷다가 돌아와서 좋은 경치를 반찬삼아 점심을 먹은 후,


이 근처 호수들 바닥을 파면 금을 캘 수 있다는.. 골드러쉬가 이 근방이었다고 한다


또 아이스크림을 그만... 뉴질랜드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다 엉엉… 카운트다운에서 세일하면 자주 사 먹는 그 Deep South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맨날 배스킨라빈스에서 똑같은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여기 오니까 아이스크림 천국임. 나중에 이탈리아 가면 젤라또에 삼시세끼 눈 돌아가려나 싶다.



천천히 이동하자는 생각에서 근방의 저렴한 캠프 사이트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근심 걱정이 없어지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햇빛 내리쬐는 잔디밭에 요가매트를 펴 놓고 운동 후 샤워하고 나오니 세상 천국. 해가 길어지면서 거진 아홉 시까지 밖이 훤하니, 한참 책 읽고 글 쓰고 요리한다고 뚝딱거려도 밝아서 좋다. 




호수가 아름다운 와나카



다음날은 커다란 호수가 중심에 자리한 와나카에 들렀다. 뉴질랜드 곳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퀸스타운보다 와나카가 아름답다길래 기대를 많이 했다. 기대하면 대부분 실망이 돌아온다는 걸 알지만, 여기는 진짜 아름다웠다! 날씨가 흐려도 아름다워! 사람 없는 호숫가를 걷고, 한참 앉아 햇빛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호숫가 끝으로 연결되는 장미꽃길! 아쉽게도 철이 아님 ㅠ_ㅠ


겨울에는 어딜 가도 혼자였던 것과 반대로 날씨가 따뜻해지니 여행자가 점점 많아지는데, 호숫가가 워낙 넓어서 다 여기저기 드러누워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끔 웃음 지어 보이는 친절한 사람들. 너무 격 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들과, 격한 무표정을 유지하는 차가운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이 거리감이 좋다. 


호숫가를 따라 1년 1년의 뉴질랜드 이야기를 담은 타일이 깔려 있다. 역사탐험!
Never aplogise for saying what you feel. That's like saying you're sorry for being real. 똑똑한 뮤즐리바


날씨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차로 대피하긴 했지만, 크롬웰과 가까우니까 날씨가 좋아지면 자주 올 것 같다. 퀸스타운에서 있으려고 할 땐 12월에 와카티푸 호수에서 주말마다 수영하려고 했는데 이제 틀렸으니까 대안은 와나카 호수다!




새로운 일터가 될 크롬웰 도착!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크롬웰! 마을 초입에서부터 좋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진짜 작은 동네다. 구경할 것도 별로 없고 타운센터 가운데에 떡하니 과일 모형들만 서 있다. 12월-1월이 되면 체리 시즌이 시작돼 백패커들이 모여들고, 나머지 시즌에는 과일 농장이나 빈야드 일자리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퀸스타운도 와나카도 가까운 곳이라서 살며 여행하기는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



올드 크롬웰 타운이라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체험마을 같은 공간이 있는데, 관광객들은 그리로 다들 간다. 던스턴 호수를 끼고 있는데 와카티푸나 와나카처럼 고요하고 맑은 호수는 아니라서 그냥저냥 눈요기할 정도. (경치에 대한 눈 높아져서 큰일이네)



여기서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남은 두 달 정도를 보내게 된다. 농장으로 시작해 빈야드로 끝나는 뉴질랜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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