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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17. 2020

Face Covering

두 겹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는 요즘


요즘은 하루 24시간 중 반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다. 이 지독한 역병으로부터 너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선 숨이 답답한 것도 어찌어찌 참을 만은 하다. 가끔 그냥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환경적 위기와 생존의 위협을 진화와 발전의 디딤돌로 삼는 것 같다. 수 만년 후 기록될 호모 마스크스 따위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점점 편해지는 게 인간의 적응력일까? 쌀쌀해지는 계절의 저녁 찬 바람으로부터 마스크가 얼굴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것도, 언제나 차가운 내 표정을 가려주는 것도 그런대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Nate Isaac, Unsplash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는 표정이 큰 몫을 한다. 잔뜩 찌푸린 주름, 곧 누구 하나 초상 치를 듯한 표정을 한 얼굴을 한 사람과, 초롱초롱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슬며시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은 인상에도 인생에도 큰 차이가 있다. 내 이마와 미간에 흐릿하게 잡힌 주름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토끼눈은 가려지지 않지만, 홀쭉하게 들어간 두 뺨이 주는 차가운 해골의 인상과 뭔가 불만이 있는 듯 축 처진 입꼬리를 가리고 나면 마음이 아주 편해진다. 매일 오전 집 문을 잠그고 나오면서 억지로 웃음 지으려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들은 거짓말로 나를 채우는 것 같았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안한 것일까.


이 가면은 아주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고 또 햇볕에 마르기를 반복해 딱딱하고 견고해졌다.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가면 컬렉션도 준비되어 있다. 복면가왕 뺨을 치는 가면들 뒤에 숨어서 나는 뻔뻔하게 마치 이게 본래 내 모습인 양 연기를 하곤 한다. 어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 가면, 일을 할 때에는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가면,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잘 먹고 마시고 깔깔 웃는 가면.. 한동안 시간이 지나 가면의 모양이 굳어지고 나면 변형이 어렵다. 연륜에서 오는 현명한 통찰력이 필요해 어른들 앞에서 어리광이 부리고 싶어도 이제껏 씩씩하고 철든 모습만을 보여왔으니까, 업무에서 막다른 길에 봉착해 도움이 필요해도 내가 못한다는 것만을 증명할까 봐, 때로는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전염성을 가진 생각들이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어 가면을 그대로 유지하고 만다. 가면은 마치 도자기 같지만, 깨지지 않는 튼튼함을 가졌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가면을 또 빚는다.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끔은 혼란이 찾아온다. 이게 과연 진짜 나의 모습인가? 내가 추구하는 모습인가? 내가 연기하는 모습인가? 그럴 땐 알맹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내 가면을 대하는 사람들은 뒤에 가려진 속 알맹이가 얼마나 억지 연기에 힘들어하며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알맹이 또한 가면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소중한 알맹이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두껍게 껍질을 키우는 과일이 된 것 같다. 시간과 공을 들여 껍질을 벗겨 내야 겨우 얼굴을 비추는 말랑말랑한 알맹이끼리의 대화가 가끔 그리워진다. 


어둠이 깔리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 위의 두 겹을 한꺼번에 벗겨낸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숨이 답답한 마스크도 마음이 답답한 가면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 문득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면 피곤에 찌든 얼굴, 푹 꺼진 눈으로 알맹이를 들여다보는 내가 보인다. 그때는 온전히 내가 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연기할 수 있게끔 부끄러움을 가려 주는 천 개의 페르소나는 잠시 쉬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유약한 알맹이를 돌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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