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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Feb 19. 2021

그 많던 일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디버디 인플루언서들을 떠올리며


야, 오늘 1반에서 누구누구 둘이 싸우고 누구네 엄마가 교무실로 들어갔다더라? 국어 선생님은 오늘 양말 뒤꿈치에 구멍이 줄도 모른대. 다음 주부터 체육 선생님 바뀐다는데? 새 없이 이야깃거리가 쏟아지는 학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부엉이로 내용을 주고받았다면 운동장은 온통 똥밭이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말이 아주 많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여느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정보의 호수 근처에서 물장난을 치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은 어찌나 그렇게 빠른가. 기다리는 학생들은 오는 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느 지역에서 오는지, 무슨 운동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줄곧 전학생 얘기를 하며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더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의자와의 마찰로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하다거나 격한 놀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솔기가 틑어진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빳빳하고 반짝거리는 것 같은 새 교복을 입고 교문을 들어서는 전학생의 등장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았다.






중학교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청소를 마친 후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열린 문과 창 너머로 교실을 바라보자 이제 좀 휴식을 취해 보려는 빈 의자와 책상에 반 친구들 얼마가 걸터앉아 교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문을 통해 자리로 가려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담임 선생님인가? 했는데, 그보다는 한참 키가 작고 우리와 똑같은 교복을 바짝 몸에 맞게 줄여 입은 학생이었다.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그 얼굴에는 아주 고운 참빗으로 정성을 다해 결을 맞춰 넘긴 듯 보이는 깻잎 모양의 앞머리가 이마에 착 하고 달라붙어 있었다. '쟤가 전학 왔다는 왕깻잎이구나.' 본인을 그렇게 칭한다고 했다. 교실에 도착하기 전에 왕깻잎이 학생들을 상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여기는 번호 상으로 한참 뒷반이었고 떨어진 교실에 배정을 받은 걸로 알고 있었다. 나와 친구가 앞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흐름이 끊겼는지 우리 쪽을 쳐다보는 왕깻잎의 얼굴에는 어쩐지 조금 화가 같은 표정이 올라왔다. 손가락을 까닥이며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내던 그 아이는 선생님의 교탁 앞에 있으니 본인이 선생님이라도 됐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내 발은 자연스럽게 교탁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자극에 반응이 시큰둥한 아이였다. 하지만 촉이 좋고 눈치를 잘 보는 습관이 있어서 상황 돌아가는 건 쉽게 파악했다. 깻잎 머리를 한 전학생이 이 멀리까지 혼자 와서 교탁 앞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우리 반을 어떤 방식으로든 제압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 뭐냐, 이 반이냐 등등 질문을 쏟아내는 왕깻잎에 촉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듯) 적대적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갑자기 동물적으로 반응했다. 1초 후 나는 내가 만화 속에 들어온 줄 알았다. 그 아이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코끝이 닿을 지경이었고, 부릅뜬 눈은 나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키는 비슷했지만 순간 까치발을 들었는지 눈높이가 약간 올라가 있는 게 느껴졌다. 창문을 등지고 있어 아직 솜털이 부드러운 얼굴 위에 명암대비가 선명해졌다. 누군가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있게 되면 질색하는 사람인 내 얼굴 표정에는 순간 혐오의 감정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현듯, 여기서 내가 얼굴을 피해버리면 이 정체 모를 싸움에서 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표정 그대로 한참 동안 나도 함께 노려봤다. 좀 꺼져라, 라는 마음으로.


영겁 같은 수 초가 지나고 있었다. 듣자 하니 왕깻잎은 이전 학교에서 좀 '놀다'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도 일진들이 있었고, 왕깻잎이 전학 오기 전부터 그 일진들과 관계를 이미 형성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일이 잘못되면 이 무리들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그러든가 말든가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노려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도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눈싸움의 끝이 바닥에 뒹구는 개싸움이 되더라도, 나는 운동을 배운 적이 있고 악다구니가 있어서 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개싸움까지 생각이 굴러가는 소리가 왕깻잎에게도 들렸을까. 판단이 섰는지 다시 발뒤꿈치를 바닥에 붙인 왕깻잎은 1초 만에 표정을 바꿔 활짝 웃으며 잘해보자고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뭘 잘해봐...? 통성명을 마치고 반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혼자 만화 속 세계에 사는 미친년 같네.'


오자마자 일진들과 복도를 휩쓸고 다니던 왕깻잎은 그 미친년 같은 성향으로 한동안 학교 전체의 집중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그 무리에 끼지 못하게 되더니, 조용히 학교를 다니다 소리 소문 없이 또 전학을 가 버렸다. 나는 저 쉬지 않고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하루아침에 닥치게 한 원인이 대체 뭘까 궁금해했다. 






우리 학교에는 학년별로 크고 작은 일진 무리가 있었다. 두 학년 윗 선배들은 총 열몇 명이 함께 다니면서 우리 주변 학교들 뿐만 아니라 구 전체를 휘어잡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16살 학생들 다수가 모였지만 최근 사회면 기사들을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사고 같은 것들에 휘말리지는 않았던, 소문만 무성한 반항아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중 하나는 초등학교 때 정글짐을 오르며 함께 놀던 친구였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유치원 바지에 오줌을 싸는 것까지도 보면서 자란 친구였을 수도 있다. 남자애들은 반년만 지나도 머리 하나만큼 쑥쑥 자라서 위협적일 수도 있지만, 여자애들끼리는 덩치나 키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진들을 무서워했을까? 공공의 적인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반항할 있는 배짱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술 담배를 들키지 않스킬이 있어서? 


그들은 덜 다듬어진 형태의 인플루언서였던 것 같다. 지금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처럼 사진과 동영상으로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강력한 매체로 그들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버디버디 인플루언서.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당시엔 온갖 이야기를 담은 개인 쪽지와 전체 쪽지가 버디버디와 미니홈피, 프리챌 클럽을 통해 인터넷 세상을 돌고 돌아 현실 세계로 흘러들어왔다. 소문이 돌고 돌아 편견을 만들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 방과 후 인터넷에 접속해 있으면 그 과정을 다 볼 수 있었다. 새로 산 운동화, (당시 막 출시됐던)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폰, 사용하는 말투나 이모티콘 등은 작은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또래 집단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수단을 일진들은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았다. 그들이 프리챌 클럽을 통해 다른 학교 일진들과 교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룹의 크기를 키우고 영향력을 퍼트리는 것 또한 지금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무서워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돈을 뺏기거나 머리채를 쥐어잡히거나 복부를 강타당하는 것도 끔찍했겠지만, 왕깻잎과 눈싸움을 하면서 나는 우리 학교의 일진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맞는 것보다는 이 일의 끝이 잘못되면 내가 학교에서 혼자가 될까 봐 무서웠다. 그런 미친년도 하루아침에 입을 다물게 하고 전학을 보내는 그런 영향력.


버디버디 인플루언서들은 권력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굳이 가르치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진짜 무서운 일진은 선량한 학생을 괴롭히지 않는 대신, 권력을 좇는 일진-to-be들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조종했다. 조폭 영화들을 보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낀 건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열여섯의 나이에 저러한 생리를 어디서 체득한 것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학교의 일진들이 떠올랐다. 군대식 문화나 위계적 질서의 영향일까?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권력을 쥐고자 하는 자들을 흔들어 약한 자를 움직이게 한다. 


나이가 어리고 판단이 흐려 실수를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할까? 괴롭힘 당한 학생도 돈을 뜯긴 학생도 그래 봐야 1-2살 차이가 날 뿐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2학년이 실수를 하는 '어린'나이라고 치자면, 그 시기를 거치는 학생들은 모두가 친구를 때리고 소문을 비틀고 돈을 빼앗는가? 한 순간의 실수였고 후회한다면 뼈를 깎는 반성과 제대로 된 사과가 있었는가?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며 졸업을 하고 나면 끝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운이 좋지 않은 경우 다음 진학 이후 지속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버디버디 인플루언서들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Unsplash @pixel_talkies


최근 뉴스 연예면, 스포츠면 가리지 않고 학교폭력 가해자로 밝혀진 공인들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그에 비해 내가 만난 일진들은 귀여운 수준이지만, 어딘가에서 누굴 폭행하고 담뱃불로 지지고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줬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궁금해진다. 너희는 여전히 그렇게 잘 살고 있는지, 버디버디로 쌓은 힘을 휘두르던 작은 사회를 벗어나 큰 사회에 나가서도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지. 그때 하던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백 원 이백 원씩 뜯고 있지는 않겠지, 거리에 나앉아 있지 않다면.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숨만 쉬어도 일이 잘 풀리고 나쁘게 사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벌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쁜 놈들이 더 잘 사는 게 더러운 세상의 현실이라서, 그저 나는 그때의 그들을 떠올리며 그 많던 일진들은 다 어디로 갔을지 궁금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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