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전자 TV사업부 구매팀은 나의 첫 직장이었다.
연간 10조 원이 넘는 금액을 구매에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고, 덕분에 구매팀이 시장에서 갖는 Buyer로서의 파워 또한 상당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패널, 유리기판 등은 공급자가 제한된 seller 중심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L사는 이들 부품을 그룹 내 계열사들로부터 주로 공급받았기에, 외부 공급자들조차 L사와 거래를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정도였다. 그만큼 회사의 브랜드와 협상력이 막강했다.
내게 할당된 품목은 PCB(Printed Circuit Board)였다. 반도체와 각종 부품들을 조립해 TV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으로, 패널처럼 고가의 부품은 아니지만 연간 구매액이 5,000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구매 비중이 큰 아이템이었다. 당시 담당자였던 전임자(사수)는 팀 내에서 인정받던 차장님이셨고, 그분의 후임이 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신입사원이 가진 특유의 패기와 열정으로 밀어붙였고, 거래처를 통해 배운 것도 많았고, OJT를 통해 원재료 구조, 원가 분석, 제조 공정, 경쟁 구도, 협상 전략 등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돌이켜보면 주변의 여러 도움으로 빠르게 1인분을 해낼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니였나 싶다.
구매팀에서는 보통 금액이 클수록, 공급자 중심의 시장일수록(바이어의 협상력이 약해지므로) 팀 내 관심도와 성과 압박이 커진다.
구매팀 전체에서 유사한 아이템을 묶어서 그룹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회로물, 디스플레이패널, 반도체, 기구물 등) PCB는 회로그룹에 속해 있었고, 그 중에서는 가장 금액이 크고 전략적인 품목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성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각자가 맡은 품목에서 숫자를 맞추면 전체 그룹과 나아가 팀의 성과가 나오는 구조였기에, PCB 담당자는 회로물 내에서 언제나 1번 타자로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이유 덕분에 나는 실적을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고, 선배들은 어느새 나를 ‘슈퍼신입사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1. 시장 구조적 유리함
PCB는 공급자는 많고 수요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구조였다. 기존 공급사들은 거래 유지 및 물량 확대를 위해 가격 인하에 적극적이었고, 신규 공급사들은 거래선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접근해왔다. 그 결과 자연스레 가격 경쟁이 형성되고, 원가 절감 목표를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었다.
2. 사내 정치적 상황
전임자인 사수가 파트장으로 승진하였고 이는 곳 파트내 모든 담당 구매물품에 대한 관리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공급사들은 파트장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절감 협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특히 PCB회사들은 본인들 담당자가 승진했으므로 더욱 협조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사유로 그 기반 위에서 실적을 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성과는 내 실력보다는 시장 구조, 회사의 협상력, 그리고 기존의 기반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스스로 잘나간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언제까지고 내가 잘나갈 거라고 믿었고
나같이 젊고 유능한 사람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도 가졌고
그 와중에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급사에 무리한 요구를 반복했고
때로는 그 요구로 인해 공급사는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위와 같은 생각이 지속 되면서 선진 기업들은 어떻게 하는지 직접 배워서 그들을 계몽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도 건방진 사고의 흐름이었던게 고작 신입이 수십년간 이어온 거대한 회사의 비즈니스 하는 방식과 공급자들과의 관계를 알지 못했는데 그들을 계몽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러한 생각이 점점 확신이 되면서, 나는 결국 입사 2년 만에 L전자를 떠났다.
당시 가장 선진화된 구매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던 미국의 거대 IT 기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이어가겠다.
그때의 나는 ‘구매’라는 업무에 대해 아직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더 열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