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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코홀릭 Oct 11. 2017

#9. 친절함이 맛있는 도시

처음인 장소에서 무얼 먹으면 좋을까


 여행 중 어떤 도시에서든 식당을 결정하기란 나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그 날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한식, 중식, 일식, 양식 혹은 패스트푸드 중에서 마음 편히 골라 들어가면 될 일이 대한민국 국경만 넘어서면 그토록 쉬운 일도 이토록 어려워진다.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나에겐 음식에서도 해당이 되는 일이다. 그건 내가 딱히 미식가라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리는 음식이 많은 입맛이 까탈스러운 사람도 아니고, 진지하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평가를 해야 하는 직업인 맛 칼럼리스트도 요리사도 아니지만 단지 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전 세계 어딜 가든 거리낌 없이 현지 음식을 무난하게 소화해내는 사람이 정말이지 부럽다.


그런 나이기에, 여행 중 식당을 선택하는 일은 관광코스를 짜는 일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이 낯선 도시에서 과연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내 나름의 기준은 물론 있다.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식당의 내부


 일단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도시에서 유명한 음식 혹은 꼭 먹어야만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은 음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항구도시라서 해산물이 신선하다던지, 특정한 재료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이 생산되고 품질 역시 좋은 지역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가 나에겐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렇다고 현지 느낌을 완전히 삭제해버린 한국인들만 찾는 식당을 선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어느 정도 신뢰감을 두고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좋겠다. 사실 여행을 꽤 해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들이 없는 곳만 일부러 찾아다닌다는 사람들이 많다. 즉, 현지인들로만 북적이는 현지스러운 그런 식당을 선호한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앞서 말했던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실패라는 경험이 주는 무서운 선입견


 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갔었다.

그때의 난 첫 유럽여행이기도 했거니와, 현지 음식을 잘 못 먹는 나 스스로는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객기 아닌 객기를 부렸던 것 같다. 여행객들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을 선택했고, 연달아 실패하며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입맛도 버리기를 몇 번쯤 하고서야 일일투어를 진행했던 한국인 가이드에게 하소연을 하며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던 쓰라린 기억이, 아니 추억이 있다. 꼭 머리로 부딪혀봐야 그것이 딱딱한 돌인지 알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현지에서 오랜 생활을 하셨던 한국인 가이드분께 추천받았던 식당이 스페인 신혼여행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 best 3 안에 든다. 그 식당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스페인이라는 그 근사하고 멋진 나라가 '제대로 된 음식 하나도 못 먹은 나라, 내 입엔 너무 짠 나라'로 박혀있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만큼 음식이란 여행에 있어서 매우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 같다.


어디에선가 들었던 식탁 매너를 지키기 위해선 식기는 바깥쪽부터 순서대로.


 하지만, 내 기준에 있어서 흔히들 말하는 미슐랭 몇 스타와 같은 미식가들의 성서처럼 느껴지는 지침서는 결코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런 고급진 느낌의 레스토랑들이 비쌀 것 같다는 인식도 물론 있지만 사실 여행에서 식사 한 끼쯤 근사하게 먹는 게 뭐 어떤가. 그러려고 여행이라는 미지의 길을 나선 것 아니겠는가. 오늘 거하게 먹었다면 내일은 우아하게 바게트 빵 하나로 하루를 건사할 만큼의 열정은 있지 않은가. 내가 잡은 예산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 되는 일이니까 식사비용을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사실 아무리 유명한 셰프의 솜씨라도 내 입에 안 맞으면 그건 맛있는 음식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정성스럽게 차려주시는 엄마표 밥상은 과연 별점을 몇 개나 줄 수 있을까.


자다르의 한 식당에서 만난 식전빵


 그렇게 내 나름의 엄격한 기준으로 선택한 자다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식사.

자다르 내에서는 이미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있기도 하고, 한국인들도 꽤 왔다 갔고 비호감보다는 호감이라는 의견이 더 많았던 식당으로 향했다. 자다르의 크루즈 선착장 맞은편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높은 유명세 때문인지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위치적인 장점 때문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격대는 물론 비쌌다. 실내에 넓은 좌석을 확보하고 있는 식당이었지만, 난 3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바로 앞의 바다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석으로 자리를 선택했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레스토랑이라 평소라면 손님들로 바글바글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비수기에 방문해서인지 오픈 시간에 딱 맞춰 가서인지,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는 굿 타이밍이었는지 내가 오늘의 첫 손님이었다.


포크도 두 개, 나이프도 두 개, 와인 무식자인 내 눈엔 그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 잔은 여러 개.

뭔가 고급 레스토랑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테이블 세팅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은근 짜릿하다. 마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한껏 멋을 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사하게 차려입고 기분을 낸 외식처럼.


Appetizer - 참치샐러드


 차창밖으로 보이는 자다르의 푸른 바다에 심취해있었는데, 웬 애피타이저 한 그릇이 내 앞에 배달되었다.

이건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아닌데 잘못 나온 것 같다며 더듬더듬 짧은 영어로 점원분께 말을 건네었더니, 모든 식사 주문객들에게 나오는 애피타이저라며 마음껏 즐기면 된다는 말과 함께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로 내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해주신다. 공짜라니 무조건 기쁜 마음으로 먹기 위해 가장 바깥쪽 포크를 집어 들었다. 딱 우리나라식 참치 통조림이랑 생긴 건 똑같은데, 조금 더 잘게 다져진 느낌이랄까? 한국껀 나름 참치를 씹는 맛이 느껴지는데 이 애피타이저는 그렇진 않다. 역시나 내 스타일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금세 포크를 내려놓는다. 나중에 주변 테이블 손님들을 슬쩍 보니 이 애피타이저를 살짝 떠서 식전 빵 위에 올려서 함께 먹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 내 입에만 짰던 게 아니었어. 그들도 간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분명 빵과 함께 먹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도 따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까보다는 훨씬 더 먹을만하다. 그렇다고 맛있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역시 사람 입맛은 모두 제각각이지.


트러플 소스가 올려진 아귀요리


 주문을 할 당시에 "우리 가게는 SEAFOOD가 신선해요~ 한 번 보여드릴까요?"라는 말과 함께 각종 해산물들이 올려진 엄청난 크기의 쟁반을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셨던 적극적인 점원분의 말에 이끌려 주문했던 오늘의 메인 메뉴는 감자 뇨끼와 함께 나온 트러플 소스가 올려진 아귀요리(Monkfish)이다. 캐비아,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송로버섯(트러플). 이탈리아가 트러플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크로아티아의 트러플이 이탈리아로 다량 수출된다고 할 만큼 크로아티아는 트러플의 산지이다. 그 비싼 송로버섯으로 축제가 열릴정도라고 하니 꼭 맛을 볼 수밖에. 한국에서는 제대로 트러플을 이용한 음식을 아직은 접해본 적이 없어 주문을 하고서도 엄청 기대를 했었다. 사실 내가 자다르의 많고 많은 레스토랑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 식당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고.


 달큼하고 약간 짭조름한 트러플 소스가 제대로 잘 스며든 만족스러운 아귀요리.

정말 아귀는 씹을 것도 없을 만큼 너무나 부드럽고 촉촉함 그 자체였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 기분이랄까. 얼마나 푹 삶았길래 생선살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함께 나온 한국식 수제비와 너무나 비슷한 식감이었던 감자 뇨끼도 꽤나 잘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하지만, 이 음식의 큰 단점이 있다면 아귀가 달랑 4조각뿐이라는 점이다. 한국돈으로 약 34,000원이나 하는 이 메인 요리의 양이 나의 주린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혼자서 4조각을 먹어도 부족한 판인데, 나의 여행 파트너와 둘이서 두 조각씩 나누어 먹고 나니 그릇에 남는 건 감자 뇨끼뿐이다.


소고기 안심 리조또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함께 주문했던 리조또가 연이어 등장해주었다.

트러플이 들어간 소고기 안심 리조또. 역시나 이번 요리에도 트러플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그런데 요놈 생각보다 맛이 엄청 독특하다. 한국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참기름이 너무 과하게 매우 과하게 들어가서 고소하지만 끝 맛은 좀 느끼하기도 한 그런 맛이랄까. 하지만 비싼 소고기 안심이 큼지막한 덩어리로 꽤 많이 들어있는 건 참 좋았다. 보통은 소고기 안심이 얼마나 들어갔나 뒤적거려야지만 몇 점 눈에 보일 정도인데, 이곳의 리조또는 거의 두 스푼에 한 번씩은 소고기 안심이 쌀과 함께 입으로 들어오더라. 그 크기도 큼직큼직하게 썰려있어서 씹는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너무나 양이 적어서 서운했던 아귀 요리랑은 반대로 리조또는 겉보기엔 양이 엄청 적어 보였으나 그릇의 홈이 꽤 깊어서 생각보다 양도 충분했다.


Ice coffee & Espresso

 

 여차저차 주린 배를 채운 나는 이곳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가기로 결정했다.

커피 마니아인 나에게 있어서 여행 중 카페 탐방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그래서 웬만하여서는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연달아 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다. 그 주변에 있는 많고 많은 카페들이 있으니 그들 중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레스토랑에서는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자리 선택을 잘했기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던 친절한 점원분들 덕분이었을까, 그렇다고 음식 맛이 엄지 척을 불러일으킬 만큼 훌륭하다 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뜨거운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의 여행 동반자를 위해서, 유럽에는 아이스커피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원분께 여쭤봤더니


"우리 가게에 아이스커피는 없지만, 두 분을 위하여 제가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날 감동시킨다.

역시, 식사만 하고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싶어 졌던 내 마음을 믿길 잘했어. 좀처럼 그러지 않는 나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길 잘했어. 바로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에 그 나라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그 나라 사람들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원래 감동이란 덩치가 크다고 포장이 훌륭하다고 그 깊이가 깊지는 않은 법이니까.


 자다르 맛집으로 검색하면 우수수 쏟아지는 포스팅과 유명세만큼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흔하게 접할 수 없는 트러플이라는 귀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두 가지나 먹을 수 있어서 뭔가 엄청나게 대접받는 듯한 기분으로 분위기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스커피라는 메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커피 머신 앞에 서서 열심히 열심히 우리를 위한 커피를 만들어주시던 얼굴도 훈훈하고 마음씨도 훈훈하고, 미소는 더 훈훈했던 웨이터 분께 "Thank you so much"라고 전하고 싶다.


이렇게 또 한 번 크로아티아 사람들, 자다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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