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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Apr 03. 2024

매일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는 삶

돌아오니까 꿈에서 깬 것 만 같아...


너무도 즐거웠던 여행에서 막 돌아온 친구가 말했다. 


"엄청 행복했나 보다. 그러게 말이야, 뭐가 그렇게 좋았어?" 


"5일 동안 일어나고 싶을 때 눈 뜨고, 새로운 동네 구경하고, 유명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도 매일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매일 가고, 밤에는 펍에 가서 우연히 로컬들이랑 얘기도 하고... 너무 좋았어... 내일 출근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 정도였구나... 일상도 여행하는 것 같으면 좋겠다. 그치?


'여행' 하면서의 일상과 '현실'로 돌아와서의 일상이 너무도 달라서,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복귀했을 때 마치 아주 길고 단 꿈을 꾼 것 같은 기분... 한번쯤은 느껴봤겠지?


포르투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여행하면서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자유, 여유, 새로움 이 세 가지 때문이었다. 특히 이 세 가지는 혼자 여행할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대로 계획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발이 닿는 대로 걷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걷다가 카페 가서 멍 때리다가, 우연히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게 된다. 여행지에서는 늦잠 잘 일도 딱히 없었다. 졸리면 자니까.... 아침에는 눈이 저절로 떠진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업된 기분으로 씻고 숙소를 나선다. 

주변에 괜찮아 보였던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멍 때리다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간다. 하루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갔다가, 어느 날은 바다나 관광지에 가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에는 별거 안 하고 동네 카페에서 책을 본다. 아침에는 요가원을 찾아가보기도 하고, 밤에는 펍이나 재즈바에서 음악을 듣다가 낯설지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랑 얘기를 나눈다. 


매일 아침 숙소를 나설 때,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시간을 비워두면 예상치 못했던 작은 행복감들을 느낄 수 있는 일들로 저절로 채워진다. 내 여행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줬던 핵심은 계획으로 꽉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슴이 이끄는 대로 새로운 곳을 가면 그때마다 진짜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리스본


일상이 여행과 가장 다른 부분은 고정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다 고정된 여행... 잠깐 생각만 해도 너무 매력 없게 느껴진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여행기간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정말 정말 좋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게 된 이후에는 여행을 하면서도 원하면 틈틈이 몰두할 일이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여행기간 동안에는 매일의 일상이 자유롭고 설레고 새로워서 참 좋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쉽고 불편한 점도 꽤 있다. 이동할 때마다 매번 짐을 싸고 짐을 풀어야 하고, 교통편과 숙소를 매번 예약해야 하는 번거로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도 없고, 가끔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도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 장기 여행에선 특히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가족이나 친구과 나눌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통화를 하면서 그리움을 잠깐 달랠 수 있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감수해 내야 하는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 있다. 


여행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365일 여행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피곤하다. 일상의 루틴에서 오는 안정감과 편안함도 하루를 즐겁게 만드는 게 분명 한 몫하니까. 싱가포르에 살았을 때 실제로 1년 동안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다가 돈만 쓰면서 사는 게 지겹다며 6개월 만에 접고 돌아왔다는 커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린가'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디지털 노매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업을 하는 친구도 하나 있는데 그 자유 영혼 친구도 베이스캠프같이 머무는 한 두 곳의 메인 도시가 있다고 했다. 


산토리니 레드비치


여행을 가지 않고도 매일이 여행같이 즐거울 수 있다면?

나는 이상적인 상상을 자주 한다.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한데 막상 가려니까 귀찮음도 함께 느끼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새로움, 자유, 여유로움. 이 세 가지를 일상에서 더 자주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여행은 모든 것이 자유로운 거고 일상은 모든 것이 고정된 거.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살아야 하나?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여행에서 돌아와도 일상이 일상 나름대로 설레고 기다려지는 삶도 있지 않을까? 


영화관에서 일반 팝콘 반절, 스위트 팝콘 반절 세트 사 먹듯이 일상의 안정감과 여행의 새롭고 자유로운 경험이 믹스된 일상이 펼쳐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일상이 마치 예술작품 같은 느낌이랄까?


누군가는 이미 분명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게 꼭 연락 줬으면 좋겠다.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 :)


바르셀로나


일상과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나오는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콘셉트가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게 해주는 툴이 된다는 걸 체감했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 혼자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오감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자기를 데려가는 행위이다. 

 

이 책에서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꼭 혼자서 하라고 하는데, 혼자가 익숙지 않다면 둘이서 하면 되고 그렇게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하나둘씩 쌓아가다 보면 혼자 가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된다. 일상 속에서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길 추천한다. 


회사원이라면 평일 연차를 낸다. 왜냐면 평일에 해야 더 여행하는 것 같으니까.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밖에 나가보길. 대신 고정된 루틴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들을 기대해 보는 거지. 한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특별한 게 없다는 생각은 완전 착각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하던 것만 하고 사느라 바쁘다. 새로운 경험을 찾다 보면, 사실 경험해 본 게 얼마나 적었는지 깨닫는다.


여행하듯이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어보고, 여행 가서 가볼 만한 새로운 장소를 가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경험을 해보게 된다면 새삼 깨닫게 될걸. 


아... 멀리 갈 필요가 없었구나. 자꾸 망각하지만 이 삶 자체가 짧은 여행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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