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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담 Aug 03. 2017

오늘 집밥을 부탁해

쿡방

진행자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함께 셰프들의 화려한 칼질과 불이 익어간다. 음식이 조금씩 완성되어 갈 때 느껴지는 환희, 때론 푸근한 입담과 유머를 섞어가며 시청자와의 소통 속에서 차근차근 맛난 요리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 내는 친근함 속의 놀라움. 냉장고 속 흔하디 흔한 재료들은 어느새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맛깔난 음식으로 거듭나 얇고 새하얀 접시 위에 살포시 자리를 잡는다. 어쩌면 쿡방 속 요리 과정은 아무것 없는 벌판 위에 건축이나 미술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모양을 꼭 닮았다. 


오늘날 먹방과 함께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가 요리 방송 ‘쿡방’이다. 쿡방과 먹방은 모두 음식을 공통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지만 전자는 음식을 만드는 모습에, 후자는 음식을 먹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요즘은 인기 있는 이 두 가지의 형식을 하나로 합쳐 진화한 형태의 쿡방+먹망 예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얼마간의 재미있는 토크가 이어지고, 이후 셰프들의 화려한 볼거리를 담은 요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서로 맛을 보며 요리에 대한 평을 나눈다. 때론 거기에 요리에 깃든 사연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굳이 따라 만들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1인 가구의 증가, 개개인의 경제력 저하 등과 같은 사회현상을 원인으로 들어가며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무리 함께 할 사람이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때론 그냥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식사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혼자서는 식당을 찾아 자리를 잡는 것도 괜히 눈치다. 또한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 식당이 아무리 맛있어도 때론 그저 푸근한 집밥 한 그릇이 그리울 때가 있다. 혼자 먹어도 좋다. 하지만 맛있게 먹고 싶다. 비록 냉장고 속 먹다 남은 재료지만 무언가 그럴듯하게 먹고 싶다. 물론 누군가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내가 한다. 그냥 내가 해서 내가 먹는다.  


과거의 요리 프로그램은 여성 요리연구가가 등장하여 이른바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요리를 재료 소개와 함께 조리 방법까지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정갈하게 완성된 요리를 화면 가득 맛 들어지게 클로즈업시키며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쿡방은 가족중심의 요리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토크를 곁들여가며 혼자서 간단한 재료를 이용하여 짧은 시간 완성해 바로 즐길 수 있는 요리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완성된 요리를 먹으면서 나누는 토크 또한 이제 필수가 되었다. 재료 역시 예전에는 맘먹고 장을 봐야만 가능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동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거나 집 냉장고에 남아 있을법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재료 마련에 따른 부담이 줄어든 것도 그 특징이다.


또한 쿡방의 진행자와 요리사들이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것 역시 예전의 요리 프로그램과는 다른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단순히 주 시청자인 여성을 위한 구성이라는 해석 이외에 한발 더 나아가, 요리는 여자가 한다는 고정관념, 부엌은 여자만 일하는 공간이라는 구시대적 성 역할론으로부터 탈피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또한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들고 불을 올려 요리를 할 수 있으며 요리는 이제 힘든 것이 아닌,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부엌은 단지 가사노동의 현장이 아닌 즐거움과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쿡방의 인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의견 속에서도 조금씩 변형된 형태의 쿡방들이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다. 아마 우리의 일상과 음식은 떼어놓을 수 없기에, 또한 생활수준이 꾸준히 향상됨에 따라 쿡방은 그 내용을 달리하며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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