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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소심한 대필작가, 여전히 불편한 진실

대필작가 수임료에 대한 불편한 진실

by 연강작가

제가 살아온 지난 반 세기, 삶을 돌이켜보면

저에겐 경제관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돈을 입에 떠올리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돈이란 녀석이 눈치채고는 알아서 피해가더군요. 그럼에도 그럭저럭 몸뚱아리가 젊었기에 살만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들어가면서 사회적 위신비용이 복리처럼 들어갑니다.

누군가와, 특히 저보다 어린 사람과 차나 밥을 대면하면 내가 지불하고 싶은 욕구에 빠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아우성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구요.

저는 그동안 '돈 있는 귀부인들'이 하는 일들을

- 제 친한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이라 그대로 인용합니다- 했습니다.

독일에서 어르신들을 돕는 일이며, 다음세대를 살리는 일이며, 연극활동, 상담 봉사 등등...

제 일은 약간 뒷전이고 거대명분을 좆았습니다. 그 일은 마치 종교와도 같았죠. 하지만 그건 제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에야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재정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들입니다. 저는 제 내면의 알 수 없는 결핍을 남을 돕는 것으로 자족하려 했던 건지 모릅니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돈, 돈이 최고인 것 같더군요.


돈이 참 중요하다는데에 최근부터 동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관념이 생겨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돈을 터부시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돈에 매인 삶을 살지 않았나 싶어요.




몇 년 전부터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면의 깊은 욕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발가벗은 실루엣이 드러나더군요.


주변에 사업과 재테크에 관심 많은 지인들이 생겼습니다.

내면의 알고리즘이 저의 욕구들을 읽어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저의 추상적이고 몽상적인 삶을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빈털털이인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리적 가난의 늪에서 건져올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 참 열심히 살았는데요. 다만 재정에 대한 플랜과 아젠다가 없었어요.


그들은 제 주머니의 재무재표를 따져보며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주더군요. 그들은 제 또래였는데 언제부터 했는지 몰라도 하나같이 노후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이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지원도 빵빵했고, 투자에 대한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처음엔 먼 외계에서 들려온 웅성거림이었습니다.


그동안 약골이라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인데 준비가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제 모습이었는데 그게 그들에겐 답답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졌고, 어쩌면 지독한 도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머리를 도끼로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번도 미래를 위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내려놓음'이 아닌 생각의 게으름이었죠. 그래서 제 통장이 여전히 깡통이었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돈을 싫어한 것도 아닌데, 애써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했습니다. 돈이라는 맘몬을 속물인 것처럼 폄하하려는 내 안의 시도도 있었구요. 고상한 척, 갖은 모양새를 냈던 것이죠.


아나똘 프랑스의 소설 <타이스>의 파트니스 신부를 기억합니다. 창녀인 타이스를 내면으론 욕망의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겉으론 그녀의 인생을 구원할 것처럼 다가섰던 모습을 말이죠. 저 또한 고지대에 홀로 앉아 있는 수도승처럼 고상한 척 삶을 걸어온 겁니다.


이제야 고해성사합니다. 저, 돈 무지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이제라도 돈 벌고 싶습니다. 하하...




여기까지 주섬주섬 써놓고 대필이야기를 들어가려고 하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오늘은 대필과 돈 이야기를 조금 할렵니다.


대필작가는 1인 기업입니다.


스스로 계약하고 스스로 수임료도 정해야 하지요. 자신의 수고에 대한 경제관념과 계산이 빠르고 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 그러한 행위들이 돈을 밝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대필작가로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껏 다른 직업을 병행합니다. 일감이 규칙적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책이 출간되어야, 일이 그제서야 끝나고 수임료도 받기에 그 전까지는 손가락을 빨아야 할 형편이죠. 그나마 전 결혼해 남편이 벌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래도 제 일은 필요했습니다. 사실 작가,라는 직업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지금같이 너나 나나 글을 쓰는 세상에서는 글쓰는 것이 대단한 명예와 부도 아닙니다.

20대 때 잡지사 기자, 라고 하면 이미지가 꽤 괜찮았습니다. 지금은 언감생심!! 기자, 하면 기레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크고 작은 잡지사와 출판사는 또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1인 출판사 설립도 무진장 쉽습니다.


그런데 아주 고무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모두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 이제서야 대한민국에 기록혁명이 시작된 겁니다. 기록이 있어야 문화 선진국입니다. 그 세상이 도래해서 참 아름답습니다. 전, 정말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필작가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기본을 준수한 사람입니다.


돈을 받고 남의 글을 써주는 일이긴 해도 자본주의 사회이자, 기록문화인 지금의 시점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봅니다. 타인의 글쓰는 욕구를 채워주니 돕는 일이고, 덩달아 돈을 받는 일이니 자본주의를 실천했으니 두 마리의 토끼를 거머쥔 셈이죠.

허리 위와 아래를 모두 충족시킵니다.


사실 저는 이전에 대필작가를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2화에서 언급했듯 순전히 직장에서 근무할 당시 울며겨자 먹기로 대필의 맛을 보았던 셈입니다. 독일에서는 지인을 통해, 그리고 연결고리가 넓어져서 소개로 일하게 된 경우입니다. 그러기에 수임료 매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보면 남의 글을 재능기부로 수정해주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제 시간의 감가상각비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어떻게든 김치랄지 반찬을 싸주며 마음의 빚을 줄이려 하시지만 좀 허전하긴 합니다. 한인회장의 취임사를 대필하거나 그런 일도 해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글쓰기로 잠깐 봐준 지인이 문학상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밥을 사더군요. 저도 기분이 덩달아 좋았는데, 한편으론 나는 도대체 뭐하면서 돌아다니지.... 하며 자괴감이 살짝 들었습니다.


어쨌든 어느 정도 비즈니스적 마인드로 장착되지 않으면 딱 남 좋은 일 하기 쉽상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자신이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정확히 돈으로 환산하고 받아야만 진정한 프로라구요.

이름 대면 모두가 아는 분과 관계된 일화입니다. A선생이 90년대 한창 잘 나갈 때라고 합니다. 강의도 뛰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던 때였죠. 몸값이 엄청났죠. 독일에서도 그를 좋아하는 한인들이 많았나 봅니다. 한인 대표 한 분이 한국에 계신 A 선생에게 특강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A 선생의 요구조건이 까다로왔답니다.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에다 고급호텔은 기본이고, 강사료도 꽤 불렀나 봅니다.


결국 자린고비 검약하는 재독 한인 어르신들이 모셔오는 걸 고사했다고 하네요. 조건이 서로 맞지 않아 무산된 겁니다. 재독 어르신들, 물 좋은 데 여행가는 비용 좀 아껴 이런 특강에 투자하면 얼마나 좋아요? 근데 한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돈이 아까운 거죠. 그 이야기 들으면서 저는 A 선생의 처신이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들었다면 A 선생을 두고 '속물이시구먼!'하고 비아냥댈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정말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무엇으로 드러내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란 녀석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시간은 금이다'라고 했겠습니까? 겉으로는 웃고 말았지만 A선생의 당당한 기세가 부러웠습니다.



전 여전히 작가 수고비 계산이 어렵습니다.


대필작가로 일하면서 제대로 제 일의 가치를 환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전조사 비용, 인터뷰 시간, 원고 작성 등등 세분화해서 시간당 얼마, 아니면 원고지 장당 책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고민입니다. 특히 아는 분들의 글을 쓸 때는 '에잇 좀 희생하더라도 도와드릴까?' 충동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동기부여가 현격히 줄어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객관적 조율을 해줄 대필작가협회 같은 단체도 있나 봅니다.


2년 전, 제가 협력해 만든 문학 단체에서 한인 청소년들을 위해 연극 공연과 공연 전 연극치료적 차원에서 규칙적으로 모였습니다.


무엇보다 한인 청소년들의 정체성과 동기부여에 대해 마음에 품은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거의 1년 여 매주 모이고 연극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연습과정에서 이런저런 바쁜 아이들이 결석을 하곤 합니다. 나중에 아이 엄마 중 친한 지인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돈을 받고 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저도 제 아이를 연극에 참여시키지만, 대가 지불이 없으니까 참여시간에 대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에요."


아! 그래서구나. 재능기부를 무조건 선하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올 수 있겠다 생각했죠.


독일어의 Gift는 '독'이라는 의미고 영어의 Gift는 선물의 뜻입니다. 독일어가 영어와 비슷한데 이 단어 하나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일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선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후부터는 어떤 행사를 개최할 때도 소정이라도 참여비를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연극의 경우에도 제 스스로 그 시간 동안 배우는 게 많았기에 배움의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공짜가 없습니다.


음식점의 물값도 비싸고 화장실 사용도 돈을 냅니다. 컨텐츠 관련 분야는 지적재산이라는 이름으로도 고부가가치입니다.

미국이나 제가 사는 독일은 대필작가가 대중적입니다. 극작가 브레히트도 가끔 자신의 희곡작품을 대필을 썼다고 해요. 힐러리 여사도 회고록을 대필작가랑 함께 썼습니다. 회고록을 3명의 대필작가의 도움을 받아 썼으니 얼마나 알찬 글이 나왔을까 당연지사지요. 힐러리도 뛰어난 언필가인데 유능한 대필작가들과 협업했으니 주옥같은 글이 나왔겠죠.



사실 드라마 극본도 메인 작가가 서브작가들과 의논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곤 하잖아요. 외국에서는 바쁜 유명인들을 위해 교정이나 글쓰기를 함께 하곤 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이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은 모두가 상상했듯 대필작가의 작품입니다.


어떤 경우 원작자가 원고를 작성하면 대필작가가 윤문을 보거나 다시 인터뷰를 거쳐 첨삭을 거치거나 취합합니다. 저도 먼저 원작자가 글을 쓴 원고를 윤문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수임료도 어느 정도 차등을 주게 됩니다.


대필작가는 새로운 직업군이라기 보다는 수면 아래에 이미 있었습니다. 이제는 뭍으로 올라와 하나의 직업군으로 전문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기에 그에 상응한 대가 지불의 현실화도 당연지사입니다.


전, 지금은 수임료 계산에 좀더 신경을 쓰고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홀로 하는 작업이기에 외롭지만, 또 그게 매력인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에게 터치받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합리적으로 내 일의 가치를 매기게 됩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선한 동기로 시작한 일이기에 조금은 희생을.택합니다.

혹시 이런 제 모습이 아직도 비즈니즈 마인드가 한참 멀었을까요?


그저 제 식대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p.s 지난해 말, 제가 썼던 대필책이 출간되어 잠시 쉬고 있습니다. 그분이 북토크를 진행하자고 하는데 고민 중에 있네요.

이번 화에는 예민한 돈에 대해 썼는데 아직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벌고 있으니 걱정마십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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