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하면서 만난 현숙한 여인
2011년 쯤이었어요.
이상하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녀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어요. 그녀가 저에게 차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하기 전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이죠.
동네에서 가까운 ‘칼슈타트’라는 백화점 3층에 레스토랑 겸 카페가 있었어요. 그녀와 처음 그곳에서 만났어요. 그곳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덜어 무게에 따라 계산하고 먹습니다. 굳이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면 커피나 차만 마셔도 된답니다. 다 먹은 후 그릇들을 식기대에 갖다놔야 합니다. 그 대가로 팁을 주지 않아도 되고 종업원이 자리를 치우지 않으니 마음에 부담이 적답니다. 전 종종 그곳에서 글을 쓰곤 합니다.
한국인 여성 A씨. 그녀의 첫 인상은 아주 독특했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죠.
이마를 다 덮는 모자였어요. 아이보리색에 깃털이 꽂힌 우아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어요. 모자 안에 황금빛의 스카피로 머리를 감싸, 한 올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어요. 한눈에 히잡(이슬람 여성들의 머리 가리개)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흰색 원피스 위에 코발트색의 코트를 걸친 그녀는 그냥 공주의 자태였어요.
당시 오십대 중반쯤 되어보였지만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했어요. 보톡스 주사를 맞지 않은 건 확실해요. 얼굴이 자연스럽고,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 정도의 자연스러움. 목소리는 귀부인처럼 조용하고 나긋했어요. 몽타주 그릴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길게 묘사를 하냐면, 그녀의 모습을 글로 남겨놓고 싶어서에요.
자신은 공대 출신이고,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라, 한글을 쓰는 것도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시간은 많다고 하면서 천천히 나와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죠. 나는 그녀와 대필 계약을 했어요. 셈에 밝지도 않은데, 독일식으로 종이를 꺼내 ‘액수가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필로 썼어요.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제 서류철에 들어 있을 겁니다.
A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왔어요. 자신의 집안을 설명하는데, 지방의 유지였나봐요. 대학은 물론 유학까지 보내는 경우는 당시 회갑이 가까운 그녀 나이대엔 흔치 않았으니까요. 아들만 주루룩 있는 집에 딸 하나 있는 막내여서 금지옥엽이었대요.
집에 하인까지 두었는데 ‘아씨’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고귀한 영애였지요.
그녀와 나는 한 주에 한 번씩 만났어요. 몇 개월 만났는데 그 중간에 그녀가 한국 방문하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 두 달 정도 쉬니 맥이 끊겼어요.
“책은 천천히 써도 좋으니, 나는 연강과 규칙적으로 만나 내 삶을 나누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녀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고, 당시 독일에 온 지 몇 년 안 된 저로서도 이런저런 독일 삶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A씨는 만날 때마다 밥과 차를 샀어요. 의뢰자가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긴 하면서도 미안해서, 한 번쯤 내가 사려고 하면 손사래를 쳤어요. 그녀는 워낙 부자 남편과 함께 사는 터라 돈 걱정은 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녀의 남편은 이슬람계 종교지도자인 ‘이맘’의 아들이었어요. 요즘은 모스크마다 목사처럼 이맘을 두고 상주한다고 해요. 하지만 카톨릭 신부처럼 임명직이 아니라 명망이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추대직이고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A씨는 결혼할 때 이슬람 종교에
귀임한다는 서약을 했대요.
유교 양반집안의 자제인 그녀는 특별히 거부감이 없었대요. 저는 사실 기독교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라면 당연히 'No'를 했을 것 같아요.
남편은 대학교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친절하고 당당했던 남편은 A씨를 보자마자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온 ‘아씨’를 향해 구애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녀는 싫지 않았대요. 남편의 떡잎을 알아본 것도 있구요. 나중에 남편은 자신의 나라를 위한 경제협회 대표로 일했습니다.
언젠가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하더군요. 그녀가 컴퓨터에 끌쩍거린 일기 같은 글을 출력해서 나에게 건넸어요. 한국에 있는 오랜 친구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고, 자작시도 담겨 있었어요.
저는 슬그머니 눈을 돌려 집 안을 훑어보았어요.
실내는 그녀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섬세했어요. 벽은 화려한 비잔틴 양식의 문양으로, 커튼은 프릴이 곱게 드리워졌어요. 테이블 위에는 고급스런 찻잔과 쟁반이 그윽했어요.
가장 특이했던 것은 그녀의 옷차림이었어요. 히잡을 쓰지 않았는데, 긴 머리카락을 고데기로 말아 내린 머리에 화려한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어요. 그것도 앙드레 김 디자인 옷처럼 어깨뽕 패드가 잔뜩 들어간 옷 말이죠.
순간적으로 옷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도 이렇게 입고 있는지, 아니면 손님이 와서 그러는지 물었어요.
그녀는 가볍게 눈웃음을 짓더니 말했어요.
“집에서도 이렇게 있어요. 남편은 나를 로즈라고 불러요. 아내는 늘 남편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풀 화장을 하고 옷을 예쁘게 입으려고 해요. 결혼한 이후부터 30년 이상 해오니 습관이 되었네요.”
집에서 늘 부스스한 머리에 파자마나 잠옷 차림으로 컴퓨터에 앉아 있는 나와는 대조적이었죠.
“연강, 여자는 아름답게 꾸며야 해요. 그걸 ‘자기관리’라고 하지요.”
몇 년후였나? ‘개그콘서트’의 ‘관리자들’이라는 코너에서 개그우먼 장하나가 했던 ‘자기관리!’멘트를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
그녀는 금요일마다 남편과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결혼생활 내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지키는 루틴이라고 하네요. 그녀의 남편 또한 금요일은 타국 출장이 아니면 어김없이 ‘내 사랑 로즈’라고 부르며 금요일에 데이트 신청을 한다네요. 한때 저도 짝꿍에게 그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우리는 서로의 분주함 때문에 금요일을 온전히 서로를 위해 내놓지 못하더군요.
그녀는 저에게 대필 의뢰자가 아닌, 인생에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던 분입니다. 제가 당시 뭔가 시작하는 일이 있었는데 망설이던 때였어요. 그때 A씨는 말했어요.
“연강, 역사는 바쁠 때 일어나요. 일이 많다고 외면하지 말아요. 그 일이 해야 할 일이라면 시간이 길을 내줄 거에요.”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 생각났어요.
하루 18시간을 일하며 책임감으로 걱정이 많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그는 ‘너무 바빠서 걱정할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사실 여유가 생기면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쓸 데 없는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인생을 돌이켜보니 바쁠 때 이룩한 일들이 더 많았어요. 오히려 한가할 때는 빈둥거리다 시간을 허비했지요.
저는 그때 이후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지면 순응하고 덤벼든답니다. 그렇게 지나다보면 내가 뭔가 해내었드라고요. 건강도 마찬가지에요. 오히려 즐겁게 일을 하다보면 질병이란 녀석도 슬그머니 몸을 빼더군요. 대신 중요한 건, 마음의 시선이죠.
‘오늘 만큼은 멀리의 기대치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고 할 것에 대해 나 자신을 맞추며 살자’는 것이죠.
그녀는 저를 데리고 참 많은 곳을 다녔어요. 근사한 찻집이나 레스토랑도 소개해줬지요.
한 번은 그녀와 함께 남편 나라의 대사관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그곳에서 대사 부인을 인터뷰했지요. 통역은 물론 A씨였어요.
대사부인은 나와 A씨를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 화려한 관저 게스트룸으로 인도했답니다. 대사 부부는 평소 A씨 부부와 친분이 두터운 것 같았어요. 부인은, A씨가 얼마나 독일 내 자기들 국가 부인회를 잘 이끌고 있는지, 고상하고 인텔리한 한국여성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어요. 저 또한 한국인으로 도매급으로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내려뜨리느라 힘들었습니다.
책 집필에 대한 자료들이 어느 정도 쌓일 무렵, 그녀가 집 건축문제로 분주해졌어요.
도시 외곽에 있는 넓은 대지에
자신의 집을 짓는다고 했어요.
자신이 직접 집의 디자인을 담당했죠. 저 또한 제가 쓴 희곡의 연극공연을 한국에서 올릴 예정이라 분주한 때였지요. 마침, 그녀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만날 때마다 '책은 천천히 출간해도 된다'고 말을 해줬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집필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요.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어요. 그 사이에 저는 한국에 사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편도 아팠고 덩달아 제 몸도 좋지 않았어요. 늘 우환은 겹쳐서 오는 것 같았어요.
2년 전 어느 가을 날, 코로나 상황도 어느 정도 진정되어가는 시점이었어요.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연강, 내 집이 드디어 완성되었어요. 한 번 방문할래요?”
저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녀의 집을 향했어요. 그녀의 집은 우리집에서도 1시간 30분 정도를 가야 했어요. 거의 도착할 즈음, 전화를 했더니 이미 정문 앞에 나와 있다더군요.
현관문에 들어서자 저는 깜짝 놀랐어요. 겉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는데 실내는 아방궁이 따로 없더군요. 실내 장식이 모두 금색깔인 집은 처음 봤어요. 엔티크한 가구에 색깔은 죄다 금이에요. 물론 도금이겠지만, 화려하고 우아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과거 오랜 명망을 누린 그녀 남편 나라의 번영이 집안 가득했어요.
그동안 그녀는 무척 바쁘게 지냈다고 해요. 사실 저 또한 분주한 시간을 보냈으니 서로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선생님, 이제 여유가 되시나요? 책 작업 들어갈까요?”
“연강은 이제 시간 괜찮겠어요?”
저는 얼른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일었어요. 하지만 그때 다시 만난 이후 갑자기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게 되어 시간은 계속 뒤로 미루어졌어요.
그녀를 만나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대필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일입니다. 그녀에게서 상냥하고 여성스런 말투, 순수한 미소, 배려하는 태도 등... 성경이 말하는 현숙한 여인이 A씨가 아닐까 싶어요.
올해는 그녀의 책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너무 미안해서요. 사실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끝내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든요. 책이 출간되면 그녀와 근사한 저녁을 해볼까 합니다. 만난 지 10년이 넘은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가 많겠지요.
벌써부터 설렙니다.
.
P.s
이 글을 쓰면서 고민했어요. 성공한 이들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 저어하면서...
얼른 대필을 마쳐야 할 것 같아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선생님, 달려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