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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이 Jun 17. 2023

콜라와 명절

나의 오빠

나의 명절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차리는데서 시작한다.

유난히 텅 비어보이는 거실 한 자락에서 적막을 깨기 위해 TV를 틀고 밥을 준비한다.

전에는 전도 직접 부쳤지만 올해는 근처 시장에서 샀다. 시장에서 산 전도 꽤 먹음직스럽다. 

몇 가지 명절 음식이 준비가 되면 오빠가 도착한다. 오빠 손에는 펩시 콜라가 들려있었다.

"오빠 내가 코카콜라 사 오라 했잖아"  

짜증섞인 말투로 오빠를 타박했다. 

오빠는 내게 그냥 먹으라고 했지만 난 코카콜라를 먹겠다고 우겼고

몇 분에 실랑이 끝에 오빠는 다시 코카콜라를 사러 나갔다. 

오빠가 다시 사 온 콜라는 한식과 어울리지 않았고 몇 모금 먹지도 않았다. 

머쓱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매니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2시간 여를 같이 보낸다.

"너는 왜 말이 없냐"

친구들과 만나면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나지만 오빠를 만나면 나는 입을 다문다.


"넌 아빠를 닮아서 말이 없어."


말이 없던 아빠는 우리 집이 나락으로 고꾸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생 직장인이었던 아버지는 몇 번의 사기와 잘못된 투자로 빛을 지고 몇 년 동안 사기에 대한 재판을 했다. 그 사이 가세는 더 기울어져갔고 아빠는 그 기간동안 또 다른 빚을 지게 되고 되었다. 수십 년을 회사와 가정을 위해 몸 바쳤지만 그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일선에서 퇴장해야 했던 아버지의 인생의 말로는 비극 그자체였다. 아버지는 결국 남은 인생을 가족들의 원망을 들으며 죄인처럼 살아갈 뿐이었다.

모든 일의 원인은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자를 하기 전 사기를 당하기 전 우리가 모든 것을 공유했다면 그 누가 됐건 말렸을 것이다. 그곳에 투자하지 마. 사람을 믿지 마 그 아저씨는 나쁜 거 같아라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10년간은 전화 한 통 어려웠다. 그래도 명절이면 오빠와 만났다. 우리 집이 풍비박살이 나고 집에 있던 물건들이 타인의 손에 쉽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오빠는 생각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빼앗아 갈 수 없어."


그 뒤로 오빠는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시원에서 살아야 했고 얼마 전에 작은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20대였지만 어리고 학생인 우리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누구도 우리의 삶을 알지 못했지만 오빠와 나는 서로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냈는가를 알고 있어 서로에 대한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오빠가 미국에 있는 학교에서 박사 후과정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난 그에 대해 긴 말은 하지 않고 잘된 일이었고 나는 축하 해라는 말 한 마디만을 건냈다. 미국에서 혹시 외롭지 않을지 건강을 잘 챙길지 걱정은 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빠는 투덜거리며 또 다시 넌 말도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너는 빨리 남자친구도 만들고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어."

"나 간다."


마치 숙제를 끝낸 듯 오빠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오빠는 늘 자기 몸뚱이 만한 가방을 들고 다닌다.

왜 저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지 하루동안 저렇게 많은 책을 다 읽는다는 걸까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누구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오빠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명절이 돌아온다. 난 이제 텅 빈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코카콜라는 미리 사두면 된다.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이도 없고 결혼을 하라고 재촉하는 이도 없고 나를 짠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다. 그저 방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 늦잠을 자고 밀린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오늘 밥은 뭘 먹었고 요즘 내가 친한 친구는 누구고, 요즘 가장 웃기고 재밌었던 일은...

중얼거려 본다. 혹시 오빠가 돌아왔을 때 내가 오빠가 궁금해하던 내 일상을 잘 말해줄 수 있도록

연습해 본다. 오빠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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