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양새는 이미 정해진 것일까
'1988년 8월 18일생 뭘 해도 남보다 많이 가질 8자'GD가 쓴 노래 가사 중에 잊히지 않는 구절이다. 이 가사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8을 사용한 기가 막힌 라임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이 노래를 듣던 나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의 첫 커리어를 콘서트 조연출로 시작했던 2016년에는, 늘 밤을 꼴딱 새우는 리허설을 해가며 저 노래를 들었다. 무대에서 화려하게 노래하는 가수와 그에게 환호하는 몇만 명의 팬과 공연 하나를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는 스태프들.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팔자는 어떤 모양일까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팔자는 삶의 모양 같다. 물이 그릇에 담길 때, 그 그릇의 모양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사건들도 개개인의 팔자의 모양에 따라 다르게 담기는 기분이 든다. 비슷한 상황, 유사한 기회들도 전혀 다른 결과와 국면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스스로의 팔자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탐구를 거치곤 했다. 보통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는 어떤 연월일시에 어떤 성향으로 태어나서, 누구와 결혼하고 언제 죽는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팔자란 선택의 모양에 훨씬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팔자에 대해서 생각하면 뒷배가 없고, 염치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짐을 나눠질 이가 없으니 뒷배가 없고, 괜한 책임감에 이고 지고 가는 것들은 많으니 염치는 많다. 이러한 팔자가 지난 10년간의 인생의 족적을 이끄는 방향키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은 선택과 큰 기회 앞에서 모든 선택의 판단이 팔자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이 당연하게 했던 선택들의 기반에도 팔자가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대부분의 삶의 선택을 이러한 모양으로 하겠지만, 후회도 별로 없다.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모양의 선택을 한 내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타인의 팔자의 모양을 오래 두고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나의 팔자의 모양과 판이하게 다른, 그리하여 같은 상황에서의 선택도 너무나 다른, 타인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할 따름이다. '저 상황에서 저게 되는구나'와 같은 신기함은 이내 저 사람의 팔자의 모양에 대한 관찰로 바뀐다. 선택에는 정해진 방향과 모양이 있다. 나는 그것이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나침반이라고 믿고 팔자라고 부른다.
팔자는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인생의 짐을 씩씩하게 지는 사람과 늘 회피하는 사람을 각각 부모로 두고 있으면 곧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른이 해야 할 고민을 다 떠안아서 먼저 하고 있었던 나를 보아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10년째 자기 자신을 탓하며 한 걸음을 채 못 떼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도 팔자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때로는 팔자가 억울하기도 하다. 때로는 팔자에 감사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팔자를 이기는 의지를 가진 개인이고 싶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타인의 팔자에 대한 나의 번민과 고뇌는 오지랖이며 에너지 낭비라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팔자의 모양도 바꿀 수 없는데, 타인의 팔자를 내가 어찌하겠는가. 더욱 다행인 것은 간간히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내심 스스로가 가진 팔자의 모양새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뒷배가 없고, 염치가 많아서 다른 이들의 배가 부를 때까지 내 몫을 나누고 그제야 숨 돌리는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할 것이다. 뒷배가 없고, 염치가 많아서 스스로 세운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생활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뒷배가 없고 염치가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큰 규모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그리고 그 험난하고 진 빠지는 팔자를 끝까지 응원하는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런 모양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