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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아이디어스

by 이백구십칠

'선물은 전략의 영역에 있다.'

P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받는 사람의 취향, 축하의 강도를 반영한 가격대, 사회적 통념 정도가 선물의 기본 구성 요소이지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스러운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선물에는 상대방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의외성이 필요다. '승진 기념 선물이니까 만년필' 같은 공식은 안정적이나 예측 가능하므로 기쁨이 크지 않다. 물성적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스토리텔링도 중요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선물도 주는 사람의 사연이나 샤머니즘적 의미가 더해지면 가치가 배가된다. 그 밖에도 희소성, 계절성, 타이밍, 받는 사람의 애장품과의 시너지 등 선물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변수들은 수없이 많다. 때문에 P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일이 생기면 기획자의 면모를 한껏 살려 상대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솔루션(다시 말해, 선물)을 도출해 내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처럼 상황별로, 가격대별로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을 추천해 주는 플랫폼도 생겨났지만 P는 상대방에 대해 요모조모 생각해 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지금 타이밍에 그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선물을 발품 팔아 구하고 예쁘게 포장해 허를 찌르는 타이밍에 전하는 전방위적 선물 이벤트에 열을 올렸다. 그것이 진정한 선물이라는 신념이라도 가진 것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선물 전략가' P에게도 어려운 경우는 있었다.

예를 들면 아이들. 전략적으로 선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대방의 심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아이의 심리라는 것은 쉬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살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토끼라는 사실에 기초해 토끼 인형을 선물해도 "토끼는 핑크색이어야 해!" 하며 울어버리는 것이다. 토끼는 보통 하얀색이라는 성인의 상식은 아이의 세계에선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때문에 아이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Depth Interview를 선행하는 편이다.

"인형이 좋아? 장난감이 좋아? 동물이면 어떤 동물이 좋아? 색깔은? 요 정도 크기면 어때?"

'의외성'이 주는 기쁨의 배가는 포기해야 하지만 이게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다.

P에게 또 다른 난관은 어머니다. P의 어머니는 경기도 출신이지만 충청도에서 오래 사셨으므로 충청인의 바이브가 온몸에 어 있으시다. 충청인들은 본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해학과 메타포 활용의 달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 어번에 생신인데 가을 자켓 하나 어때요?"

"그거 입고 나갔다가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려. 조용히 다니고 싶은디"

P는 아직도 이 말이 좋다는 말씀인지, 싫다는 말씀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P는 선물 전략이 난관에 부혔을 때 종종 아이디어스를 찾는다. 아이디어스에는 대량 생산이 아닌 수공예로 만든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설마 이런 것도 있을까?' 싶은 선물을 찾을 수 있고 '이런 게 있다고?' 싶은 상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제품의 퀄리티는 어떤 판매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를?'하고 혹하지만 막상 물건을 받고 나면 실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P는 그런 실망도 수공예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디어스와 함께 P는 여러 선물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거쳐왔다. 풍수지리 인테리어에 심취한 벗 Q에게 행운을 부른다는 해바라기 모양의 드림캐쳐를 선물했고 카페를 연 선배에겐 가게의 무드와 어울리는 컬러 토분에 담긴 피쉬본을 선물했다. 아버지의 칠순잔치 때는 용돈이 뿜어져 나오는 머니건으로 어르신들에게 파티의 신세계를 경험시켜 드리기도 했다.


P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귀찮아하는 스스로가 왜 이렇게 선물에 열을 올리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말 대신 선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선물의 본질을 요약했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네가 그 꽃을 위해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말주변 없고 스몰토크엔 쥐약인 P에게 선물은 'P가 상대방을 얼마나 아끼는지' 전하는 비언어적 방법인 것이다. P가 아이디어스에 머무는 시간만큼 상대방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도 이상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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