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 '이 사람도 나를 언젠간 떠나겠지.'
Kevin:
20대 중후반쯤이랄까, 뭐, 굳이 이쯤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랑 연애를 하고 나면 새로운 연애의 시작점에서 괜히 겁을 먹게 되지 않아요?
Laura: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빠지게 되는 사람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드물게! 이쯤 되면 아무나 좋아하게 되진 않죠, 아무래도....
Kevin:
맞아, 정말 그래요. 사람을 좋아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지는 느낌이에요. 시작이 참 어렵더라구요.
Luara:
개인적으로 전 시작보다는 연애를 하면서 그 사람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을 때 겁먹더라구요. 그 때쯤 지나간 연애들이 막 떠올라요, 그때 걔도
이렇게 잘해줬었는데 마지막은 이별이었지, 이런 것들?
Kevin: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Laura:
그 걱정이 현실이 돼 버릴까봐 함부로 생각이나 걱정조차 못 하겠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정말 나 없이는 못 살 것처럼 3년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줬던 사람이 한 순간에, 다시 생각해봐도 참 모질게 나를 떠났다.
이상하게도 그 후론 연애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별 한치 앞의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도망가는 게 참 쉬워지더라, '이 사람도 나를 언젠간 떠나겠지.'
연애를 시작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연애는 이미 시작했는데 상대가 나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면 겁부터 지레 먹고 주춤하게 된다는 거였다.
올해 2월, 그 겁이란 게 질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이렇게 움츠릴 바에야 당당하게 연애따위 안 하고 말지.'
그 무렵 내게 조심스레 다가오는 이 사람이 왠지 모르게 반가웠고, 그렇게 또 연애를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볼수록 닮았더랬다, 3년 연애 후 모질게 나를 떠난 그 사람과. 말하는 것, 표현하는 것, 행동하는 것, 웃는 것, 사소한 버릇까지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그렇담 너도 나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겠다, 아무렴.'
벽을 쳐야 한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생각보다 긴급한 신호였는지 나를 데려다 준 그를 배웅하고 나면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되지? 이대로 스쳐야만 해야 하나.
Kevin:
사랑이 늘 좋을 수만은 없지 않아요?
Laura:
사랑에도 바이오리듬이 있죠.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가고. 무던히 둘이서 잘 겪어나가야죠, 거쳐야 하는 것들인데.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나는 왜 연애 중에 저 남자를 더 좋아할까봐 겁을 먹는 걸까, 그 이유가 이별 후폭풍 때문일까? 상대를 못 믿어서일까?
사랑이 늘 좋을 수만은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이별 자체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 이별이 오는 이유 또한 생각해보니
사랑이 늘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시작한다, 지금은 대화도 잘 통하고 웃음코드도 잘 맞지만 언젠간 싸울 거란 걸.
내 경험담을 하나 비추자면 이렇다.
매번 신학기를 맞아 새 책으로 수업을 하면 제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형형색색 예쁘고 깔끔하게 필기를 시작한다. 채점할 때 내가 동그라미를 예쁘게 안 해주면 "아악, 쌤!!!"하고 외치는 애도 있다.
웬걸, 2주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연필로 대충 끄적여놓고 숙제 부분은 큼직하게 접어 덮어버린다. 한 달 후, 꽤나 너덜너덜해진 책을 내게 들이민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훑어보면 중간중간에 다시 예쁘게 필기한 부분이 꼭 있다, 숙제 접는 부분도 작게 고이고이 접어두기까지 했더라, 이미 그 전에 막 날려쓰곤 꾸깃꾸깃 접었으면서!
어제 남자친구에게 회사 여자 사람이 밤늦게 연락이 와 한판 했더랬다. 무조건 미안하다고 손잡고 눈치보는 남자친구를 가만 보고있자니 괜히 별 거 아닌 걸로 화를 냈나 싶었다.
다음 날, 친구를 만나러 삼성역을 가야 되는데 전날 화냈던 게 자꾸 맘에 걸려 얼굴을 봐야겠단 맘으로 연애 후 처음 데려다달란 말을 꺼냈다. 그러고도 집에 와서까지 맘이 개운치 않아 카톡으로 말을 꺼냈다.
(※ 긴 카톡 주의)
참 고마운 말이다, 싶다가도 평생 저 마음 잊지 않고 이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문득 생겼다.
하지만 우리도 언젠간 서로의 일상 속에 편안함으로 안일해질 때가 올 거란 걸 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 아닐까?
연애가 시간을 타고 어느 정도 흐르면 관계를 인정해야한다, 서로에게 새로운 사람이 아니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