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와 비거니즘의 교차성 1.
*녹색연합의 웹진, 녹색희망 295호 코너 <비건이건 아니건 시리즈> 내에 기고된 글입니다.
인간의 생애 최초 기억의 평균은 3~4살이다.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을 기억하려면 1942년생 정도가 일제 강점기의 시대를 전할 수 있는 마지막일 것이다. 해방이 아닌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려면 적어도 1930년대 생이여야한다. 1930년생은 2023년 현재 93세,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95세이다. 십 년 뒤엔 우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 이야기해줄 세대를 잃을 수밖에 없다.
MZ 세대만 해도 일제의 역사와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MZ 세대의 조부모는 70, 80대로 일제를 경험하지 않았다. 조부모 역시 윗세대 이야기를 해줄 뿐, 생생하게 일제 침략을 이야기해주기 어렵다. 태어나는 시기는 세상을 인식하는 보편과 평범의 기준이 된다. 아무래도 Z세대인 내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이 한국식이라 생각해도, 그것 역시 일본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다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이 컸다. 잊지 않기 위해, 일제 강점기와 식민주의가 우리 문화유산에 남긴 흔적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일본 점령(1910-1945) 이전에, 대부분 한국인은 경제적,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인 요인들 때문에 주로 식물에 기반을 둔 식단을 먹었다. <고기의 인문학>에 따르면 고려와 조선은 각기 다른 이유로 소의 도축을 금지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기 위한 우금령이 여러 차례 반포됐다. 채식주의의 오랜 전통과 자비로운 삶에 중점을 둔 한국 불교에서는 완전 채식을 해왔다. 유교국가 조선은 농사지을 소를 보호하기 위해 소 도축의 수를 관리하고, 우금령(牛禁令)을 계속 반포해왔다.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육식 금지령이 1200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이후, 1871년 12월 왜소한 일본인의 체격을 키우기 위해 육식 금지령을 푼다. 1200여 년간 채식을 해왔던 일본이었기에 고기 손질과 보관에 어려움이 있었고, 50년이 지난 1920년경에야 육식이 대중화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의 고기 소비량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이 소비량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국에 축산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점령 기간, 식민지화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우월성과 현대성을 주장하는 방법으로 돼지, 소, 양, 유제품과 같은 더 많은 육류 제품 소비를 부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국 내 소비를 충당하기 위한 대량 번식과 같은 공장식 축산의 초기 모형을 한국에 도입하고 착취했다.
돈까스, 고로케, 카레라이스 등의 일본의 대표적인 돼지고기 요리가 대중화된 시기 역시 1920년대 들어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돼지 “개량”을 장려했다. 22.5kg-32.5kg 정도에 불과한 조선종 돼지는 일본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현재 국내에서 흔히 말하는 재래 돼지가 서양 돼지 버크셔와 교잡하면서 탄생했다. 한국에서 유독 좋아하는 삼겹살 역시 이 당시에, 일본에 안심과 등심을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 발, 내장, 껍데기를 남기고 간 수탈 역사의 흔적이다.
작은 조선 돼지는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개량했지만, 한우는 달랐다. 조선우는 밭을 가는 부림소로 세계적으로도 몸집이 컸다. 일본은 개량 없이 조선의 소, 150만 두의 조선우를 강제로 이출해갔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엔, 닭도 있고 소도 있지만, 돼지는 없다. 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 역시 1950년대이다. 가장 잘 알려진 <흰 소>도 1954년 제작되었다. 침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조선의 돼지가 아닌 소를 그린 이유도 한국 토종 돼지의 씨앗은 사라지고, 한국의 토종 소가 살아남았던 일제의 축산업 수탈이 영향을 끼쳤다는 추측은 합당할 것이다.
비거니즘은 단순히 동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환경 파괴의 순환에 도전하고 방해할 수 있는 실천이자 학문이다. 해외에서는 식민지 문화와 육식주의를 연결해서 보는 시도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거니즘은 식민주의의 역사적 유산과 그것이 환경과 공동체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다루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뻗어나가고 질문해나가고 있다.
육류 산업이 식민주의 및 착취와 얽혀 있는 방식을 인식함으로써, 개인은 공동체와 생태계를 우선하는 공존 가능한 문화에 기여해내가는 시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식민주의는 문화와 경제 교류를 통해서 스며들듯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성과 역사성을 존중하고 지켜내려면 그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가 할퀴고 지나간 식탁의 자리 이전에 있었을 우리의 식탁을 상상해본다. 공장식 축산이 들어서기 전에 토종 씨앗이 뿌리내리고 있었을 땅과 식탁을 상상해본다. 조선의 식탁과 고려의 식탁에는 있었지만, 더 이상 우리가 보지 못할 수많은 음식을 말이다.
식육의 근현대 소비와 수출의 시작(2019, 식육마케터 김태경)
일제 강점기 이후 한일 양돈산업 비교(2021, 식육마케터 김태경)
한국형 동물복지 연구 활발히 진행돼야(축산경제신문, 2018)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한국인의 식량, 영양 상태(이철호, 2022)
고기를 통해 본 한반도의 삶과 역사 (2019,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