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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후 한일 양돈산업 비교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국토의 면적도 넓고 인구도 2배나 많다. 

반면 현재  돼지 사육두수는 일본은 천만두 미만의 돼지를 키우고 있고 우리나라는 1100만두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걸 가지고 맛칼럼리스트 황교익은 좁은 국토에 너무 많은 돼지를 키우고 있다고 한돈 산업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황교익의 비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황교익의 비판은 우리 민족과 돼지와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 못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거다. 

과거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미친 듯 자료를 찾고 연구를 해야 한다.

거기에 상상력을 더한 해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난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마 나름 식육사를 정리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소와 돼지가 우리 역사속에 우리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아 보기 위해 나름 열심히 연구중이다. 

아마 일제 강점기에 축산물 통계를 찾아 본 사람들이 별로 없을거다.

명치유신이후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 자료를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거다. 

일제 강점기 한일 돼지 사육두수, 사육호수, 도축두수등의 찾았다. 

이런 통계 자료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도 전문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간단히 정리해 본다. 


                                우리나라 돼지 사육 두수 호수, 도축두수, 호당 사육두수

1912년 일본의 돼지사육두수는 308,970두 식민지 조선의 돼지사육두수는 616,945두다. 조선이 199.67% 거의 두배가 많다.

당시 일본 인구는 50,577,000명  조선내 인구는 16,839,685명이였다.

일본은 돼지 한마리를 163.69명이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되고 조선은 돼지 한마리를 27.29명이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돼지한마리에서 정육이 50KG 생산된다고 가정하면 

50kg / 163.69명 = 0.305kg 을 소비할 수 있었다는 

반면 조선은 50kg/27.29명= 1.83kg 을 소비할 수 있었을거다.

그럼 조선사람들이 일본사람들보다 돼지고기를 약 6배 정도 더 먹었을 수 있다는 과정이 성립된다.

물론 사육두수와 도축두수는 좀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의 한일 모두 돼지의 경우는 자가 도축비율이 높아서 통계상의 도축두수와 실제 돼지를 잡아 먹는 두수는 많이 차이가 있다. 아마 196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의 통계상 돼지도축두수에 비해 실제 도축두수가 더 많았다.  흔히 통계상의 돼지도축 두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덜 먹고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소는 일제 강점기 아니 조선시대부터 도축을 철저히 정부 통제하에 두었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한 도축 두수 통계가 있지만 돼지의 경우 마을 잔치등을 마을에서 잡아 먹는 건 도축 두수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당시의 돼지는 자급자족하는 형태였다고 봐야 한다. 

유통 물량이 상당히 적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돼지는 농촌에서 농가 부산물을 먹여서 키워서 농민들이 관혼상제등 행사, 잔치 음식으로 소비했던 음식물이라고 봐야 한다. 반면 한양등 도시에서 돼지고기는 구하기 쉽지 않은 귀한 고기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한양에서의 돼지고기가격이 소고기 가격보다 비쌌다. 

 

  1912년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돼지 사육두수와 인구를 비교해 보면 사육두수도 조선반도가 두배 정도 더 많고 인구는 일본이 3배 많았으니 사육두수와 인구를 단순 비교하면 조선에서 일본보다 1인당 돼지고기를 6배 더 소비할 수 있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거다. 

1912년은 일본이 양돈산업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고 봐야 한다.

일본은 1968년 명치 유신 이전에는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명치 유신이후 육식을 장려하였는데 처음에는 소고기였다.  서양인에 비해서 왜소한 일본인의 체격을 개선하기 위해 1872년에 육식 금지령을 풀고 육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게 된다.

1871년 12월 메이지 텐노는 육식 금지령을 해제하고, 쇠고기와 양고기, 가끔은 돼지와 사슴, 토끼고기도 올리라고 명령 내렸다.

그리고 천황이 직접 고기를 입에 댄 것은 1872년 1월 24일이었다.

1,200년간 봉인되었던 육식 금지령이 해제되고 서양 요리가 빠른 속도로 일본 국내에 흘러들어 가게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쌀과 생선, 채소로 생활해 온 일반 서민들에게 육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부와 지식인들은 육식해야 문명인이라며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는 했지만, 서민들에게는 조리법이나 먹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러한 저항감을 없애준 것이 바로 '규나베(ぎゅなべ)'다

[출처] [일본 식문화] 1,200년간의 육식 금지와 규나베(ぎゅなべ)의 탄생|작성자 동양북스

1912년은 다이요시대의 시작이다.

다이쇼 시대(일본어大正時代, たいしょうじだい)는 다이쇼 천황의 통치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1912년 7월 30일부터 1926년 12월 25일까지이다.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시기는 신해 혁명의 중화민국의 성립 (1912년 설날) 시작, 치안유지법 시행 (1925년) 또는 1927년 위기에서 끝난 시간이다. "다이쇼 1년"과 "민국 1년"은 모두 같은 서기 1912년이다.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의 도시 집중화가 생기면서 육식 소비가 늘어나서 소고기의 공급이 부족하기 시작한다. 

육식 초기에 별로 관심이 없던 돼지고기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등 일본의 대표적인 돼지고기 요리들이 유행한다.

 1895년 도쿄(Tokyo) 긴자(Ginza)에 자리한 ‘렌가테이(煉瓦亭)’에서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이용해 돈가스의 시초가 된 ‘포크(pork) 가츠레츠(ポークカツレツ)’를 만들어 팔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츠레츠는 영어의 ‘cutlet’을 일어의 가타가나로 표기한 것으로. 사람들은 ‘돼지고기’의 한자어인 ‘돈육’의 ‘돈(豚)’을 붙여 돈가츠레츠(豚カツレツ)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돈가츠레츠’의 레츠를 생략하여 부르면서 ‘돈가스’라는 이름이 탄생 되었다고 한다.

그럼 다시 1938년의 통계를 비교해 보자.

1938년의 중일 전쟁이 시작하고 1년이 지난 시점이다. 

1937년 중일 전쟁이후 해방까지 일본은 전쟁중이였으니 한일 모두 1937년이 육식 소비의 최고기 였다. 

조선은 1937년  1,625,091두의 돼지를 사육했다. 

이는 1912년 616,945두 보다 2.63배 더 많은 두수였다. 

1938년 조선의 돼지 사육두수는 1,506,628두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는 1,140,479두다.  조선이 일본보다 1.32배 돼지를 더 키우고 있었다. 

1940년 조선의 돼지 사육두수는 1,320,230두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는 797,830두 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나 조선이나 호당 사육두수가 2두 미만인 건 

양돈업이 산업이 아니라 농가 부업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거다. 

당시에는 어쩌면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돼지를 키웠다기 보다는 채비동물로 즉 퇴비 생산을 위해 돼지를 키웠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1946년 패망이후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는 88,082두로 양돈업이 무너졌다. 

우리나라는 1950년 전쟁으로 156,400두로 양돈업이 무너졌다.

1956년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는 1,170,230두 우리나라의 돼지사육두수는 1,161,417두로 일본이 우리보다 돼지 사육두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1981년 일본은 10,065,000두로 처음 천만두를 넘게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다. 

1981년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두수는 1,831,518두로 1951년 대비 1.57배 성장한 것에 비해 일본은 같은 기간 8.6배라는 엄청난 성장 차이를 보인다. 

1981년 일본의 양돈업은 산업화 되었다고 봐야 한다.

호당 사육두수는 79.4두였다. 

반면 1981년 우리나라의 호당 사육두수는 4.33두다. 이는 일본의 호당 사육두수가 우리나라의 호당 사육두수보다 18.22배 더 큰 규모였다.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두수가 천만두 이상이 된 해는 2014년이였다. 

일본은  1989년 11,866,000두로 최고의 사육두수를 보이고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2000년도의 사육두수는 9,805,000두다. 호당 사육두수는 838두다.

2000년도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두수는  8,214,369두 호당 사육두수는 345두였다.

2020년 일본의 돼지 사육두수는 9,100천두 우리나라의 돼지사육두수는 11,080천두다. 

전세계 약 6억 7700만두의 돼지가 있다.

이중 중국이 약 4억천두, 유럽연합이 약 1.5억두, 미국 약7,700만두, 브라질이 약 3700만두 멕시코가 1,150만두 사육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일본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5kg 우리나라는 24.4kg 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돼지고기 소비량이 전체 육류 소비량의 반정도를 차지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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