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97. 선연한 기억 혹은 추억, 때로는 악몽, 1988
그곳 보고 소변도 안 본다는
남자들의 트라우마 군대도
미화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50이 넘어서도 악몽에 등장하는 군대에서
사람들은 제대할 때쯤 되면
몇 가지를 챙기는데
기념패와 추억록이다.
추억록이란 군대 시절 추억을
후배들이 사진과 함께 시나 글귀로
축하해주는 일종의 사진첩이다.
그걸 왜 그렇게 죽어라 만들어 나갔는지
모르겠으되 젊은 날 눈부신 청춘이 아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지 만화를 좀 그린다는 이유로
50권도 넘는 선임들 추억록 담당이었다.
나를 두들겨 패던 고참도 황도를 사주며 빌었고
어떤 승질 더러운 중대장도 나중에 내게 부탁했다.
나이 어리고 날 갈구던 선임하사 그 녀석도
내가 그려 주었다.
문제는 내가 나갈 때 기념패 제도는 사라지고
그려줄 후배가 없었다.
우습지만 억울해서였을까,
난 스스로 만들었다.
워낙 숙련된 기술 덕분에
손쉽게 그렸다.
전두환 시절 4년제 대학 병영훈련 덕에
노태우 시절 3개월 혜택을 받고
수십 명 선임을 제치고 전역했다.
임진강, 연천, 파주 가고 싶지 않은
그리고 기억도 하기 싫지만
색 바랜 사진에 어쨌든
내 청춘의 시가가 들어있다.
안녕~ 녹색 옷에 실려 간
푸르른 내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