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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정치질이야?

언제 어디서나요.

by 이븐도


그렇게 근엄한 얼굴들로..


콘클라베. 2024


1. 11000원 / 2시간
2. 재관람 의향 : YES
3. 추천 : Yes
4. 동행 : 취향이 맞는다면.
5. 의심하는 이를 선택하랬다.



사실 그 현악기 소리와 중간의 그.. 멋진 말만으로도 이 영화를 다시 볼 이유가 충분하다. 또 좋았던 거?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화면, 정갈한 옷차림,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마 유적, 또 안정감을 주는 화면, 다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더 부각되는 각 인물들의 외모와 표정과 행동거지.

결국 폭로 문서를 108장 복사해 식당에 뿌리는 점잖은 또라이 영감을 거슬러 관찰하고픈 호기심, 파란 의자가 가득한 공간에 먼지 앉은 빨간 모자들을 들쓰고 언쟁을 벌이는 왜인지 귀여운 화면, 또 그 현악기 소리. 결말 고 나니 다르게 보일 추기경들의 표정과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 그리고.. 절대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교훈까지.





아, 교훈은 아니고 내가 느낀 가장 큰 점이다.

왜, 인생 뭣 같으면 절이나 들어가서 살라고 하잖아. 절은 무슨,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눈물을 짜고, 비밀을 만들고, 감추고, 누군가를 추앙하고, 의견을 표명하고, 또 그 의견이 다른 꼴 보기 싫은 인간과 점잖게 또는 점잖지 않게 대립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이거만 한 교훈이 어딨어.

그러니까 곱게 살아야겠다. 곱게 늙고. 그게 어떤 건지는 차차 생각해 볼 문제다. 아. 도망칠 수 없다니.

절망적이지만 또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참, 나.








현생이 좀 팍팍한 관계로 밖으로 나가 개봉작들을 잔뜩 보고 있다. 지겨울 때까지 우려먹을 거다. 내 이천만 원, 그리고 내 멍청함. 아무튼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다. 가끔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뭐든 뚜껑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돈을 더 들여서 보려 했던 미키 17은 OCN에서 틀어나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감상을 남겼고 큰 관에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른 동네 예술영화관까지 찾아가 본 이 영화는 그 이상으로 돈값을 했다.


원래 예고편을 잘 안 본다. 기대가 되면 되는 대로 그 기대가 무너질 게 싫어서, 기대가 안 되면 그 없는 기대감을 뛰어넘길 바라는 마음이라서. 이건 보고는 싶었는데 사실 주저 없이 영화관으로 향하지는 못했다. 본 사람들은 극찬을 하는데.. 글쎄. 끌리는 요소가 그다지 없었다. 티저를 검색해 20초쯤 봤나, 그리고 곧바로 껐다. 느낌이 왔다. 아, 쩐다. 어쨌든 보지 말자. 예고편.






아, 우리끼리 얘기하게 나가시라구요.


네이버 영화 소개글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게 다다. 교황을 선출하는 내용. 러니까, 사제복을 입은 똑같은 사람들이 점잖은 얼굴로 비방하고 감추고 밀어주고 싸우는 내용이다. 꼴에 다 경건한 분위기라서 아무튼 웃기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는 웃기고 귀엽기까지 하다.


하하. 저렇게 조용한데, 저렇게 경건한데. 나를 용서해 달라며 운을 띄우고 고해성사를 하는데.. 포깁 미? 저거 마법의 주문 아닌가. 술자리에 데려다 놓으면 딱이겠어. 원래 그런 B-side가 재밌잖아.


멋지게 보존된 성당 건물에서 사제복을 입고 조용한 표정을 짓고 있는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사연이 다 신성한 것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웃겼다. 하긴, 사제도 사람인데. 역시 사람은 보이는 게 중요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보일지 결정하는 건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장하시겠나요?


아무튼, 주인공이 무슨 이야기를 듣고서 약간 착잡하나 그 감정을 억누르려는 표정으로 문을 닫은 채 나설 때마다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다. 아, 뭔데요. 저도 좀 빨리 알려달라구요. 얼른얼른, 빨리빨리. 정갈한 복도, 나무 문, 흰 벽, 그 사이를 걸어가는 검은 사제복의 그 뒷모습을 보며 후반부로 가서는 그냥 그런 조급한 마음부터 잔뜩 들어서 스스로 웃겼다.


아무리 홀리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해도 그 도파민 솟는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걸 어떡해. 그리고 그 할배는 멋지게 주름진 얼굴로 다분히 또라이에 가까운 행동들을 하나씩 해 나간다. 왜, 나는 나이 먹으면 다 성질이 죽어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했지? 웃겨. 병원과 지하철에서 그렇게나 갖가지 나이 든 사람들을 보고도 말이야.





교황. 교황? 다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신선 같은 사람을 어떤 켕기는 마음 없이 만장일치에 가까운 갈등 없는 절차로 뽑는 그런 과정이 동반되는 건 줄 알았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이래서 선입견이 무섭다. 교황도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 사람인데 그렇게 추대가 되는 거잖아. 왜 난 그렇게 생각했지. 아무튼 이 영화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을수록 흥미롭다. 어떤 직종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는 말이 딱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내가 학교나 직장에서의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터뜨리면 엄마아빠는 늘, 어디나 그런 사람 있어, 하고 김새는 소리를 했다. 그 성토의 마무리는 항상 그랬다. 그리고 슬프게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학년이 바뀌어도, 이사를 가도, 자리를 바꿔도, 대학에 입학해도, 이직을 해도, 하다못해 이 일터 외의 다른 부서에도 그런 인간들은 늘 있었다. 어디서는 나 역시 '그런 인간들' 중 하나겠지.


영화의 배경의 로마의 성당이며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제복을 입은 추기경들이지만, 사실 사람 사는 모양새를 그 프레임 속으로 가져온 내용이다. 아는 맛이라 더 재밌나? 분명 어디선가 본 내용 같은데 영상미와 사운드와 연출이 그 느낌을 아예 달리 깔아 준다. 화면 속의 저들은 심각한데 나는 어느 시점부터 속으로 쿡쿡 웃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세련되고 정리된 것들을 단정하게 내놓은 후 생각할 기회는 나에게 남겨 준다.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점이다. 소리지르고 닦달해 가르치지 않는다.



저기, 가까이서 떠들어 주세요. 안 들리잖아요.



5점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내가 몇 점을 주든 어디서도 아무 의미가 없지만. 아무튼 내가 5점 만점에 5점을 주는 영화들은 대체로 내가 어떤 부분 부분들을 강하게 마음에 들어 했고, 그래서 앞으로도 다시 볼 의향이 충분히 서는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 그 점들을 남들도 똑같이 좋아하리라는 확신은 없어 강하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의 고요한 또라이 같은 분위기와 현악기 소리가 상당히 좋았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현실 같은 화면 속에서 떠들어서 보는 나로 하여금 기분을 잡치게 하는 요소도 없었다. 나는 이 영화를.. 4.5에서 5점을 준다. 천주교와 성당과 이탈리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젊고 멋진 남자나 여자 또는 드넓어 속이 뚫리는 것 같은 풍광 등 어떤 것도 없는 이 영화에 그만하면 꽤나 없던 취향도 저격당하는 경험이었다는 이지, 하핫.



다 조졌다 이거야.


그러니까 빨리 OTT로 틀어놓고 로렌스 추기경의 설교를 노트 한편에 적어놓고 싶다. 확신은 포용의 가장 큰 적이라고. 이런 말을 어떻게 쓰지?



:)


저 말을 때때로 떠올린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사는 것도 비슷하잖아.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차라리 천사나 악마면 쉽지, 다 애매한 인간이고 세상만사라 이런저런 크기의 돌다리를 건너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기쁘게도 이런 세상살이에서 놓여날 수 없다구? 의식이 망가져 몸만이 병원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교황 뽑는 점잖은 할배들도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거 봐.





+


영화 시작 전 전 기억에 남는 건 진짜 수녀복을 입은 수녀 두 분과 중장년층의 단체 관람객이었다. 그리고 완성은, 교황청에서 싫어하겠는데? 하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던 할아버지 관객들의 말. 대충 그럴 것 같은 엔딩이긴 했는데, 그분들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어땠는지 몹시 궁금했다.


어쩌면 그래서 감상을 나누는 것까지가 진짜인 영화다. 감상도 남의 감상도 잔뜩 궁금해지는 컨텐츠.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영화다운 영화 같다고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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