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시 반, 스케이트보드를 나눔했다. 아들이 타고 싶어 한다고 답장을 보낸 거래자는 집 앞에 레모나와 저당 초코볼 두 봉지를 놓고 갔다.
김밥 두 줄을 먹었다. 근무 전에 한 줄, 근무 끝나고 한 줄. 다섯 시에 퇴근했다. 해가 뜨려 하는 것과 지는 것을 둘 다 봤다. 출근 때에도, 퇴근 때에도 차갑던 푸른색의 하늘에는 또 차가운 오렌지색이 섞여 있었다. 두 번 다 모두 예뻤다.
데이 근무 세 개. 두 번째의 오늘. 오전에 퇴원 서류를 알아보고 내게 점심은 안 시켜 줘도 된다고 말했던 그녀가 오후에는 병동 끝 창가에 서서 울었다. 스테이션에 앉아 전산을 보던 나는 그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병동 바깥에서 울었고 그녀의 딸이 있을 자리에서 콜벨 호출이 있었다. 병동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는 신환들이 병동으로 걸어 들어왔고, 많이 아프지만 활기찬 어린 환자가 타요 장난감을 타고 아빠와 복도를 돌았다. 이브닝 근무자들 중 몇 명은 자리가 없어 서서 전산을 봤고 무연한 표정의 실습생들이 간호사들을 따라다녔다. 교수들은 회진을 돌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펠로우들과 뭔가를 논의하고 알려 주었다. 그 모두의 일부는 큰 말소리로 너스레를 떨고 가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냥 간호사샘 불러 달래요, 무섭다는데?"
벨을 받은 선임 간호사가 말했다. 사실 별로 급하지 않았다. 산소포화도도 떨어지지 않았고 애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 중환자실에서 막 전동 내려올 친구가 있었고 나는 아마 정시에 퇴근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안아 주세요."
아빠는 그새 병실로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정말 안아 달라고 했다. 안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도 했다. 혀가 뭔가에 눌린 것 같은 발음으로 그 두 문장을 말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어떻게 그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속으로 신기해했다. 작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수한 아픔의 표현. 아빠는 눈이 빨개져서 병실 창가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꽤나 주제넘은 말을 했다. 애기 앞에서 울지 마시라고. 그리고 애를 안았다. 그녀는 또 '안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두 번 거듭해 대답했다. 누구든 내 이름을 부르면 어쨌든 뛰어가야 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그리고 어쩌면 글까지도. 모든 것은 이 현장의 아류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몹시 아팠다. 신기한 종류의 아픔이었으나 근래에 의도치 않게 잦은 빈도로 느꼈다. 대본이나 컨셉이나 설정이랄 건 한 치도 없고 지나면 그뿐인 당장의 장면들. 삶이란 무척이나 잔인하다고 그 친구를 안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정신없는 오후의 병동에서 엄마의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기억이란 어느 것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 는 문장.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읽었던 같기도 하고. 하여튼 나는 그 말에 공감한 적이 없었다. 오늘은 달리기를 하며 그 문장을 내내 떠올렸다. 동시에, 지워내고 싶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길었던 머리는 파란 빡빡머리가 됐다. 과일을 싸는 것 같은 망태기를 뒤집어쓴 소녀는 마치 원래부터 그런 환자였던 것처럼 보였다. 어제까지의 그녀가 모두 아픔이 되어 자꾸 떠올랐다. 그녀는, 그녀의 일족은 그녀가 그런 처지였던 줄 몰랐다. 사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부모는 동네 소아과나 데려갔던 본인들을 자책했다. 애는 그러면서 우는 부모를 보며 또 울었다. 나는 이 환경이, 내가 가지게 되는 마음이 내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 꽤나 괴로웠다. 내가 이렇다 한들 누군가 고마워하는 것도,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기에, 아픔은 오롯이 아픔으로만 남아 더 들러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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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번 선임 간호사는 내게 인계를 받으며 '간 지 얼마 됐다고 또'라고 했다. 문장 요소들이 빠져 있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애는 계속해서 나를 호출했고 그녀의 부모는 울며 그 소식을 복도에서 친지 등에게 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노트북이 붙은 카트를 그 병실로 끌고 들어가 일했다. 나 여기 있어, 이제 안 무섭지. 울지 마. 그게 내 최선이었다.
'혹서기 음료 쿠폰'을 썼다. 10월 31일까지였다. 옷을 갈아입고 지하 카페로 갔다가, 정작 그 쿠폰을 놔둔 걸 떠올려서 다시 올라가야 했다. 동기와 나는 둘 다 진이 빠져 있었다. 그다음 날은 병동 회식이었고 수선생님은 나에게 '진행'을 맡겼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일을 앞두고 술을 먼저 마실지 청심환을 먹을지 고민한다.
자정부터 금식. 어제오늘도 내내 검사를 한다고 그 소녀는 금식이었다. 오늘 밤부터는 또 뭐 못 먹어. 이따 저녁때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 해. 그때까지 기다리자. 뭐 먹을 거야. 붕어빵, 타코야끼. 슈크림 붕어빵이요. 밥반찬은 뭐 안 먹어? 그건 다 간식이잖아. 괜찮아요. 그럼 과일은. 이제 귤 나오잖아, 귤은 안 먹고 싶어? 자꾸 먹다가 토해서 귤은 이제 싫어요. 그랬구나.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쩌겠는가. 병원에서의 대화다. 명백히 아픈 사람과 그 사실을 알고는 있으나 상대를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 토하고, 물체가 둘로 보이고, 머리가 아프고. 식사, 수업, 걷기 등의 일상을 부러뜨려 놓은 병세를 고치기 위해 오는 곳. 대화에서, 그들의 모습에서, 망가진 흔적이 보여 아프다. 어쩌면 그 자체가 부서진 잔해처럼 보여 때로 괴롭다.